우크라이나 러시아 그리고 유라시아의 쟁투

세계 정치의 구조적 변화

[역주]

[원래 글의 첨가]

20149, 텔레비전 인터뷰에서 국가안보 전직 고문이자 오랜 기간 냉전주의자였던 즈비그뉴 브레진스키는, (ISIS로도 알려진)‘이슬람국가가 미국에 어떠한 위협이 되는가라는 질문을 받고,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우리는 세계 여러 지역에서 빠르게 번져가는 혼란을 마주하고 있다. 지금 중동이 그러한데, 그것은 서아시아로 그리고 중앙아시아로, 심지어 러시아 또는 중국에까지 그 혼란은 번질 수 있다. 또 한편으로 아프리카나 그 너머로 번져갈 수도 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후기 냉전또는 부활된 냉전이라고 불릴 만한 갈등을 러시아와 겪고 있다. 군사적으로 직접 부딪히는 것은 아니지만, 그 갈등은 우크라이나의 자유와 안정을 둘러싸고 전개되고 있다.”MSNBC, 2014914

우크라이나와 레반트지역[그리스와 이집트 사이에 있는 동지중해 연안 지역을 통틀어 이르는 말. 좁게는 시리아, 레바논 두 나라를 이른다.]의 혼란스런 전쟁은 미국의 비밀작전과 관련 있다. (소위 자유언론이라고 불리는) 제국주의 선전매체들이 일상적으로 무시하지만, 이 관련이 바로 브레진스키가 그의 유명한 책 거대한 체스판에서 거의 20년 전 설명한 전략 구상이 현실화된 모습이다. “유라시아를 지배할 그리하여 미국에 도전할 유라시아의 도전자가 등장하지 않았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이 책의 목적은 그런 점에서 광범위하고 통합된 유라시아 지정학을 설명하는 것이다.”라고, 그는 서두에서 말한다. 이 지역은 과거 500년 동안 세계 권력의 중심지였다.” 왜냐하면 “75%의 세계 인구가 유라시아지역에 살고 있고, 세계 대부분의 부가, 기업과 매장된 형태로, 그곳에 있기때문이라고 브레진스키는 설명한다. 미국의 세계 지배는 유럽 러시아 인도반도 동아시아와 중동을 포함하는 유라시아 장악에 달려있다.

중동의 광대한 석유자원 통제는 미국 외교정책의 오랜 핵심 목표였다. 2003년 이라크 침공은 미국의 군사/정치적 지휘부 수립과 지역 통제를 의도한 것이었다. 미 제국주의가 상당한 인적, 물질적 희생을 통해 세운 시아파 정권이 점차적으로 이란 회교정권과 가까워지면서 그 계획은 실패로 돌아갔다. 점증하는 이란의 영향력에 맞서기 위해, 미국과 여러 아랍정권들은 이란의 가장 중요한 지역 동맹 시리아의 바트당 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해, 지하드 봉기에 자금을 대고 무기를 지원했다.

20139월 버락 오바마는 봉기를 지원하기 위해 실행하려던 폭격을 포기했다. 유일한 아랍 동맹을 잃어버릴 것을 꺼려하는 러시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시리아가 일방적으로 화학무기를 폐기할 것을 제안한 직후였다(<1917> 36, 중동의 격변을 볼 것). 미국 국립민주주의기금(National Endowment for Democracy) 수장 칼 거쉬맨은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최근 러시아 대통령 푸틴은 시리아 아사드 정권 지지를 통해, 중동 내 러시아 지위 강화에 일정한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이 전선에서의 성공은 인접 국가에서 점점 심각해지는 문제에 비하면 훨씬 덜 중요한 사안이다. 서방과 바로 맞닥뜨리는, 전략적으로 결정적인 지역 말이다.”워싱턴포스트, 2013926

동유럽에서 우크라이나는 가장 큰 성과이다.”라고 지적하면서, 거쉬맨은 미국은 이 지역 정부와 시민사회에 개입할 필요가 있다.”라고 제안한다. 외국자본을 위해 우크라이나의 문을 열어젖힐 기회가 많다.”라고 그는 주장한다. 그것은 또한 러시아 복속이라는 더 큰 전략적 목표에 한 걸음 더 다가가는 것이 될 것이다.

러시아 민주주의 또한 이 과정에서 이득을 얻을 것이다. 유럽에 속하려는 우크라이나의 선택은 푸틴이 대표하고 있는 러시아제국 사상의 붕괴를 촉진할 것이다.

러시아는 또한 선택에 직면해야 할 텐데, 인접국에서만이 아니라 국내에서도 푸틴은 패배를 맛봐야 할 것이다.”

거쉬맨은 또한 불과 몇 주 전에 우크라이나 대통령 빅토르 야누코비치는 유럽연합(EU)과의 협조를 현대적 유럽국가 건설의 자극제라고 불렀다. 우크라이나 의회는 유럽연합이 요구하는 개혁조치들을 즉시 가결했다.”라고 지적했다.

20139월 크림반도 얄타에서 열린 회담의 핵심 의제는 우크라이나의 미래였다. 1945년에 스탈린 처칠 루스벨트가 모여 회담을 개최한 그 유명한 빌딩에서 개최된 회의에는 토니 블레어, 빌 클린턴, 힐러리 클린턴, 전직 CIA 수장 데이비드 페트라스, 전 독일 수상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세계은행과 IMF 총재들 스웨덴 폴란드 그리고 여러 나라에서 온 정치 지도자들이 참가했다. 우크라이나 대통령 야누코비치와 현 대통령인 페트로 포로셴코도 참가했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대통령의 측근인 세르게이 글라지에프도 참가했다.

대부분의 참가자들이 유럽연합 하의 우크라이나의 미래를 장밋빛으로 묘사했지만, 글라지에프는 제국주의적 정복 결과에 그다지 낙관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러시아를 표제로 다룬 미국의 저명한 경제지 포브스 2013923일자에 실린 마크 아도마니스의 글은 그 회의에서 러시아와 유럽연합이 드러낸 극명한 차이는 유럽연합에 우크라이나가 가입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여부가 아니라, 그것이 미칠 영향에 관한 것이었다.”라고 썼다. 유럽연합에 대한 개방은 우크라이나를 발전된 서방 경제에 신속히 결합시킬 것이라는 이야기를 제국주의 대표단들이 쏟아놓은 데에 반해, 러시아 대표는 경제적 붕괴를 예상하며 디폴트를 피하기 위해 대규모의 공적자금 투여가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어지러운 상황 속에서 뭔가 확실한 정보를 원하는 투자가들을 독자로 거느린, 아도니마스는 러시아의 입장에는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다.”라고 지적했다.

결국 독일과 우크라이나 소비재 생산자들 사이의 완전히 평등한 경쟁에서 누가 승리할 것인가? 단기적 관점에서, 서유럽의 선도 기업들이 우크라이나 경쟁자들보다 월등할 것이라고 예견하는 것이 미친 짓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아도니마스가 잘 알고 있듯이, 아주 극소수의 우크라이나 생산자들만이 그 단기의 시작을 볼 수 있을 만큼 오래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그는 결론짓는다.

브뤼셀[NATO, EU 본부가 있는 벨기에의 수도, 서방을 가리킴]이나 키에프[우크라이나공화국 수도, 쿠데타정권이 장악한 서부 우크라이나를 의미]의 장밋빛 이야기보다, 러시아의 입장이 진실에 더 가깝다. 우크라이나 통합 과정에서 심각한 재정적 도움이 필요할 것이고, 러시아인들은 그들이 그 재정지원자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데에 확고한 입장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누가 그 비용을 조달할 것인가? 경제위기 이전이라면 유럽연합이라고 나는 대답했을 것이다. 그러나 2013년에 그것은 가능해 보이지 않는다.”

비용 조달방법은 유럽과의 협약에 덧붙은 IMF 긴축정책에 함축되어 있다. 정부보조를 없애고 사회지출을 깎아서 우크라이나 족벌[oligarchy: 소수의 사회지배자들]들과 그들의 협력자인 서방 금융자본의 자산을 보호하자는 것이다. 미주리대학의 경제학교수인 마이클 허드슨은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IMF는 한 나라 정부의 재정적자를 메꿔주기 위해 설립된 것이 아니다. 대출금은 외국채권자들에게 갚을 돈을 꿔주는 것이고 특히 환율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다. 높은 환율로 인한 손실을 줄이려고 예금자와 채권자가 해외로 도피시키는 자금을 벌충하기 위한 것이다.”─RT, 2014년 7월 7일

우크라이나의 에너지 구입 보조를 지속한다는 약속을 포함하여, 상당히 관대한 조건으로 150억 달러의 대출을 러시아가 제안하자, 우크라이나의 억만장자 족벌들의 부패한 하수인 야누코비치는 즉각 방향을 틀어 유럽연합에 등을 돌렸다. 이에 대해 자유세계지도자들은 쿠데타를 촉진하는 것으로 응답했다.

외교정책 기관과 뉴스매체들이 우크라이나의 혼란을 심화시킨다고 한 목소리로 푸틴을 비방하지만, ‘사실주의분석가들은 다른 시각을 가지고 있다. 시카고대학 출신의 유명한 사실주의자존 머쉬마이어는 <포린 어페어스(Foreign Affairs)> 2014년 호에 실린 우크라이나 위기는 왜 서방의 잘못인가라는 논문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민주적으로 선출된 친러시아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불법적 타도는그가 쿠데타라고 정당히 이름을 붙인푸틴에게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크림반도가 나토의 해군기지로 쓰일 것을 걱정하여 크림반도를 장악했고 서방에 합류 노력을 포기할 때까지 우크라이나를 불안정하게 만드는 것으로 대응했다.”

브라운대학 스테판 킨저는 우크라이나 실패의 책임자 미국이라는 제목의 논평에서 역사적 배경을 설명했다.

미국은, 1991년 소련 붕괴 이후부터, 중국이나 이란 같은 적국에 하는 것처럼, 러시아 포위 전략을 끊임없이 추구했다. 이전에 모스크바의 동맹이었던, 중부 유럽 12개 나라들을 나토 동맹으로 끌어들였다. 미국의 군사력은 지금 러시아 국경에 접해 있다.이 위기는 부분적으로, 냉전 때부터 미국의 러시아 정책이었던 제로섬 계산법에 따른 것이다. 러시아의 손실은 미국의 승리이고, 러시아에게 유리한 것은 무엇이든 미국에게 해가 된다는 셈법이다. 이러한 접근은 사태를 누그러뜨리기보다는 대결을 더욱 고조시킨다.”Boston Globe, 201433

지난 15년 동안, 러시아 자본주의 지배자들은 미국의 하위파트너나 동맹이 되기를 바랐다. 그러나 실패했다. 그 후 그들은, 푸틴이 월스트리트저널 기자에게 20072월 다음과 같이 설명했던 것처럼, 다른 생각을 갖기 시작했다.

우리는 그 동안 러시아의 유럽 쪽에 배치했던 중화기들을 철수하여 우랄 산맥 뒤쪽으로 옮겼다. 무장병력을 30만 가까이 줄였다. 우리는 유럽재래식무기감축조약(Conventional Armed Forces in Europe treaty)이 요구하는 여러 조치들을 이행했다. 그러나 그 대가가 무엇인지 봐라. 동유럽은 신무기들을 들여오고 있고, 새로운 군사기지 두 곳이 루마니아와 불가리아에 건설되었고 체코공화국과 폴란드엔 미사일 기지가 들어섰다.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어떤 일이 진행되고 있는가? 러시아는 일방적으로 무장을 해제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일방적으로 무장을 해제하면, 유럽의 상대방도 같은 행위를 할 것이라고 기대한다. 하지만 그 반대로, 유럽은 새로운 무기와 체계로 무장하고 있다. 물론 우리는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The Pornography of Power: How Defense Hawks Hijacked 9/11 and Weakened America로버트 쉬어

 

마이단 시위두 번째 오렌지 혁명[첫 번째 오렌지혁명은 2004년에 있었다. 그 소위 '혁명'은 친러시아 정치인 빅토르 야누코비치를 끌어내리고 서방이 지지하는 빅토르 유센코를 권좌에 앉혔다]

미국의 정권 교체계획이 시작된 몇 주 후, 오바마로부터 우크라이나 파일을 넘겨받은, 딕 체니 부통령의 전직보좌관 빅토리아 눌란드는 워싱턴에서 열린 ‘2013 우크라이나 사업협의회(Ukraine in Washington 2013 Business Conference)’에서 연설했다. 그 자리에서 그는, 우크라이나의 정치적 미래에 영향을 미칠 하수인과 협력자 관계망을 만들기 위해 50억 달러라는 거액을 투자했다고 털어놨다. 미국에 고용된 청부업자들은 야누코비치 반대 시위를 시작했고 그 결과를 지휘했다. 그러나 마이단 시위[우크라이나 수도 키에프의 마이단 광장을 중심으로 벌어진 친유럽 시위. 유로마이단이라고도 부름]에 대한 광범한 지지는, 오랜 기간의 민족적 언어적 분열과 겹쳐진, 우크라이나 사회에 내재한 심각한 사회모순의 표출이었다. 우크라이나인 70%가 우크라이나어를 모국어로 여기는 한편, 상당수의 소수는 자신들이 러시아인이라고 생각한다. 산업 노동계급의 다수를 구성하는 이 소수는 우크라이나 동쪽 지역에 집중되어 있다.

마이단 시위는 우크라이나 남부나 동부에서보다 서부에서 더 인기가 많았다. 이 양상은 2004년 소위 오렌지혁명의 양상과 일치한다. 야누코비치 지지자들의 선거 탈취 시도로 촉발된, 제국주의가 지원한 그 시위는 정권교체를 낳았다. 2010년 선거에서 (당시 야당이었던) 야누코비치가 (2014년 시위에서 두드러진 반대인사였던) 율리아 티모센코 수상을 이겼을 때, 그 지지자 대부분은 남부와 동부 출신들이었다.

야누코비치에 맞선 마이단 시위는 20131121일에 시작되었다. 존 맥케인 상원의원과 그밖의 미국 고위 정치인들은 미국이 당신들과 함께 한다!”라고 선언하였다. 그 당시 정권의 무능력과 부패에 신물이 난 젊은이들은 시위대열에 빠르게 합류했다. 맑스주의자는 이와 같은 대중적 결집에 참여하여, 시위 참가자들의 분노가 문제의 근원인 자본주의 그리고 한 줌밖에 안 되는 소수의 족벌들이 공공자산을 대규모로 강탈하여 발생한 심각한 사회 불평등을 향하도록, 이끌었을 것이다.

야누코비치와 그 무리들은 썩었고 자기잇속만 차리는 자들이다. 그러나 티모센코처럼 유럽연합을 지향하는 자들이라고 해서 더 나은 것은 아니다. 야누코비치 반대자들과 결합하여, 족벌 자산 몰수, 사회보장의 재건 그리고 [이윤이 아니라] 노동인민의 필요에 부합하는 경제활동 요구를 통해, 사회주의자들은 그 시위가 혁명적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러시아, 동유럽 그리고 그 너머에서 수천만의 열광적 지지를 얻어냈을 것이다. 좌익 쪽에서 그 어떤 의미 있는 저항도 없는 상태에서, 시위는 기생적인 족벌들 사이에서 러시아편에 붙는 것이 좋은지 아니면 유럽연합에 붙어야 하는지를 둘러싼 논쟁 안에 갇히고 말았다.

 

마이단 시위에서 파시스트의 역할

폭동진압경찰에 대항하여 화염병과 각종 무기들을 빈번히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제국주의 언론들은 마이단 시위를 평화적이고 민주적이었다고 묘사했다. 서방 주류 언론들은 스보보다(Sbovoda)와 라이트섹터(Right Sector: 우익)라는 두 파시스트 조직들이 시위에서 중추적 역할을 했다는 사실에 대한 언급을 회피하고, 그들을 언급할 때는 단지 단호한 민족주의자라고 묘사한다. 두 조직은 공공연히 자신을 우크라이나 나치 협조자인 스테판 반데라[1909~1959: 우크라이나 파시스트]와 동일시한다. 반데라의 조직인 우크라이나민족주의자들(Organization of Ukrainian Nationalists, OUN)2차 대전 당시 공산주의자와 폴란드인 그리고 유대인들을 대량 학살했다. 스보보다와 라이트섹터 두 조직은 모두 스보보다 지도자 올레 티아니복이 묘사하듯, ‘모스크바-유대인 마피아페미니스트 좌익 그리고 LGBT[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성전환자 등의 성소수자]들이 없는, 민족적으로 순수한 우크라이나를 추구한다.

마이단 시위를 혁명적 의미를 가지고 있는 인민의 봉기라며 환영한 좌익 조직들은 파시스트의 역할을 자연스럽게 경시한다. 키에프[서부에 있는 우크라이나 수도]의 긴장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에르네스트 만델의 통합서기국의 극단적 기회주의 계승자는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우리는 이른바 유로마이단 운동과 나라 전체에서 표출된 대중적 민심이반과 족벌과 범죄적 정권이 없는 민주국가에서 자유롭고 존엄하게 살고자 하는 열망을 지지한다. 한편 유럽연합은 그러한 열망을 충족시킬 수 없다는 것을 확신한다.”─「우크라이나에 대한 제4인터내셔널 국제위원회 성명, 2014225

그러나 그 시점에서는, 민주적 삶을 열망하는 인민이 아니라, 우크라이나 러시아인과 유대인 그리고 공산주의자 제거를 목표로 하는 반데라의 후예들이 마이단 시위를 이끌고 있다는 것이 명백했다. 하지만 통합서기국의 소위 트로츠키주의자들은 계속 마이단 운동을 지지했다.

지금 조직된 핵심 정치세력은 우익과 극우 출신이지만, 우리는 그 운동 내에서 좌익 반대파를 건설하려는 사회 정치세력을 지지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운동의 바깥에 있기를 거부해왔고 운동 전체가 극우세력과 동일시되는 것도 거부했다.”같은 글

우크라이나 노동자와 좌익들이 장차 사형집행인들과 함께 야누코비치에 맞서는 운동건설을 도와야 한다는 제안은, 히틀러의 나치를 분쇄하기 위한 공산주의자와 사민주의자의 공동전선이라는 트로츠키의 정책을 뒤집어놓은 것이다. 노동운동의 불구대천의 원수와 연대한다는 자살적 전략은, 대중운동은 그 지도부나 정치노선과 상관없이 언제나 필연적으로 혁명적역동성을 가진다고 생각하는 객관주의적 방법론의 논리적 귀결이다.

마이단 반동들에 대한 통합서기국의 순응은, 1980년대 초 폴란드자유연대노조(Solidarnosc) 운동의 종교반동들로부터 1991년 보리스 옐친의 자본주의 반동분자들에 이르기까지 과거 소비에트 권역 내의 다양한 반동들에 대한 지지와 유사한 것이다. 이 추악한 기록들 가운데서 가장 저질인 것은 아마도 1989년의 일 것이다. 그 때 통합서기국은 발틱의 나치 협조자인 숲의 형제들(Forest Brothers)’들과 연대했다(만델은 어디까지 추락하는가?(How Low Can Mandel Go?), 1917 No. 7, 1990을 볼 것).

20여 년 전에 반동세력들에 대한 지지를 반대하지 않았던 통합서기국의 미국 지부 사회주의행동(Socialist Action), “저항운동을 지도하는 정치조직들은 명백히 반동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라며, 마이단시위의 파시스트들과 함께 하는 것에 덜 적극적이었다(Ukraine protests: What’s at stake?, 2014119). 사회주의자들이 스테판 반데라의 정치적 후계자들과 함께 싸워야 한다는 생각은 위험하고 터무니없는 생각이다. 그러나 사회주의행동이 기초하고 있는 통합서기국의 그간의 행적과는 완전히 일치한다.

최고조에 올랐을 때는 수십만 명에 달했던 야누코비치 시위 참가자 중 절대다수가 파시스트가 아닌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좌익 사회학자 볼로디미르 이셴코가 다음과 같이 묘사하듯이, 파시스트는 핵심적 역할을 했다.

사실, 집회에 참가한 아주 소수만 극우 출신들이다. 그러나 단지 몇 천 명의 사람들이 그곳에서 지속적으로 머물렀던, 독립광장의 천막농성장에서 그들은 그다지 소수가 아니었다. 더욱 중요하게, 그들은 조직된 소수였다. 그들은 명확한 사상을 가지고 있었고, 효율적으로 움직였으며, 정당방위대 안에서 수백 명의성원들을 구축했다. 그들은 또한 우크라이나에 영광을!’ ‘영웅들에 영광을!’ ‘적에게 죽음을!’ ‘우크라이나가 최고다!’ 등의 자신들의 구호가 주로 외쳐지게 하는 데에 성공했다. 그 구호들은 민족주의 하위 문화권에서만 쓰이던 것이었으나 이제는 공공연한 것이 되었다.”New Left Review, 20145-6

시위대 대부분은 1940년대 반데라의 OUN을 생각하며가 아니라, 당시 마이단의 영웅을 생각하며 영웅들에 영광을!’을 외친 것이다. 마이단시위를 지지하던 자유주의자와 진보주의자들은 러시아 선전가들의 과장일 뿐이라면서, 극우들의 역할을 경시하는 이런 구호들을 채택했다.”라고 이셴코는 말한다. 그러나 반데라주의자들은 함께 하기를 거부했다. 무정부주의 조직이 마이단 천막농성의 정당방위대에 참가하려고 했을 때, 파시스트들은 그들을 쫓아냈다. 시위에 참가하여 선전물을 나누어주고 연설하려고 하는 좌익들과 조합노동자들은 공산주의자라는 호칭으로 일상적으로 비난당했고, 종종 공격당했다.

 

미국 민주당원과 신보수의 합의: ‘빌어먹을 EU!’

에너지공급자와 EU의 경제적 통합을 저지하는 것은 러시아 인접지역에 대한 미국의 핵심적 개입 목표 가운데 하나였다. 워싱턴은 독일과 러시아 사이가 좋아질 가능성을 특히 걱정한다. 러시아와의 관계를 재구성하겠다고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오바마 민주당정부는 조지 W 부시의 공화당정부가 만든 틀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20141월 미 대사 지오프리 피아트와의 대담에서 눌란드는, ‘빌어먹을 유럽연합!’이라는 악명 높은 말을 하며, 위기를 중재하는 데에 유럽연합보다 유엔을 선호한다고 말했다. 그들은 또한 야누코비치가 물러난 뒤, 반대파 중 누구에게 키에프의 권력을 넘겨주어야 할 것인지를 논의했다. 독일은 전 헤비급 권투선수 출신인 비탈리 클리쉬코를 밀었다. 하지만 미국은, IMF 긴축과 우크라이나의 나토와 유럽연합 가입을 지지했던, ‘야츠(Yats)’로 불리는 관료 아르세니 야체누크를 선호했다.

마이단 광장에서 저격수들이 발포한 2014220, 몇 명의 폭동진압경찰을 포함한 십 수 명이 죽었다. 제국주의 언론과 반대파들이 즉각 이 죽음이 야누코비치의 소행이라고 비난했고, 분노는 폭발했다. 이 압력에 눌려 야누코비치는, 선거일을 당기고 2004년 오렌지혁명 헌법을 부활시키고 키에프 중심지에서 폭동진압경찰을 철수시키는 등의 내용을 담은, (마이단 저항시위 지도자들의 자문을 얻어 작성된) 폴란드 프랑스 독일 외무장관과의 협상안에 동의했다. 경찰이 철수하자마자, 파시스트가 이끄는 전투부대는 의회와 정부건물들을 장악했다. 야누코비치는 내뺐고, 야체누크를 임시수상으로 하는 비상정부가 2014227일에 구성되었다. 4명의 파시스트가 새 정부의 장관이 되었다. 스보보다의 창립자 가운데 한 명인 안드리 파루비는 국가안보국의 국장이 되고, 라이트섹터 지도자 드미트로프 야로쉬는 부국장이 되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그 즉시 백악관 초대장을 야츠에게 보내면서, 쿠데타를 일으킨 자들이 헌법 절차를 준수했다고 칭찬했다.

빅토르 유셴코 대통령의 전직 고문이었던 바딤 카라쇼프는 정권교체 이후 권력 쟁탈전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최근 쫓겨난 빅토르 야누코비치 대통령 치하에서, 족벌들의 이해는 그의 서로 연결된 회사 소유자 가족에 의해 위협되었다. 그들의 이해는 남은 족벌들 속에서 서로 공유될 것으로 보인다. ‘오늘 그들은 자신들을, 나라의 단결을 추구하는, 우크라이나의 애국자들이라고 부른다.’라고 카라쇼프는 말한다.”

우크라이나에서 가장 유명한 TV 정치평론가 카라쇼프는 모든 족벌들이 시위에 뒷돈을 댔다. 핀추크와 아크메토프를 위해 금속 할당을 늘려주며 유럽은 그들의 환심을 샀다. 그 둘은 모두 상당한 자산을 이미 서방에 합법적으로 옮겨놓았다.’라고 말한다.”Financial Times, 2014327

새 정권이 등장하자마자 실시했던 정책 가운데 하나는, 야누코비치가 2012년에 통과시켰던, 특정지역에서 인구 10% 이상이 사용하는 언어는 우크라이나어와 더불어 공식어로 인정하는 법을 무효화하는 것이었다. 야누코비치가 통과시킨 법안으로 동부에서 러시아어가 공식어가 되었었고, 서부의 몇몇 지역에서는 헝가리어 루마니아어 몰도비아어에 같은 지위를 얻었다. 새 정부의 조치는 허둥지둥 철회되었지만, 그로 인해 크림반도와 동부 우크라이나에 형성되었던 반감은 그 뒤에도 가시지 않았다.

미 국무성은 새 정부의 정통성을 즉각 인정했다. 그러나 동부와 남부 우크라이나인들은 생각이 달랐다. 그들이 (마이단 시위대들이 구사한 전술을 이용하여) 공공장소를 점거하고 시위를 시작하자, 제국주의 언론은 이제 러시아의 사주를 받은 사람들이며 푸틴이 그것을 조종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크림반도가 우크라이나에서 나와 러시아와 재병합을 선택하다

새 정부에 대한 반대는, 우크라이나가 차르의 제정러시아에 병합된 300주년을 기억하기 위해 1954년 니키타 흐루쇼프가 우크라이나에 할양한, 크림반도에서 특히 두드러졌다. 러시아 흑해함대의 기지가 있고 에너지수출 핵심 운송망이 있는 세바스토폴을 잃는 것은, 러시아정부에 경제적 그리고 특히 군사적으로 결정적 타격이 될 것이었다. 푸틴은 단호하게 행동했다.

2014316일 급하게 치러진 국민투표에서 크림 거주민들은 95%라는 압도적 지지로, 우크라이나 내에서 자율성을 누린다는 1992년 크림헌법의 조건 속에서 우크라이나에 남기 보다는, 러시아와 다시 병합하는 것을 선택했다. 크림 주민의 24% 정도가 우크라이나어 사용자인 한편, 거의 60% 정도가 러시아어 사용자이다. (국민투표를 대체로 거부했던) 크림의 타타르 소수민족은 12%를 차지한다. 제국주의 언론은 그 국민투표를 무시했고, 미국과 그 동맹국들이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리비아에서 충격과 공포작전을 시행한 것처럼 러시아가 크림을 그런 방식으로 삼켰다는 듯이 다루었다. 국무차관 존 케리는 뻔뻔하게도 자신의 이해를 관철시키려고 그럴 듯한 구실을 만들어서 다른 나라를 침략해서는 안 된다. 이번 것은 그와 같은 구실로 완벽하게 조작된 침략이다.”라며 식식거렸다. 그러나 미국의 우파 자유주의자인 론 폴이 지적하는 것처럼, 침략은 없었고 단지 민주적인 투표행위가 있었을 뿐이다.

국민투표가 치러진 직후 백악관은 우크라이나 크림 지역에서 오늘 치러진 국민투표를 우리는 거부한다. 이 투표는 우크라이나 헌법에 반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2월 쿠데타 또한 우크라이나 헌법에 반하는 것이었으나 그것은 미국의 심기를 전혀 건드리지 않았다.

이번 봄 우크라이나 동부에서 그 지역이 어디로 나아갈 것인가를 묻는 유사한 국민투표가 실시되었을 때, 2014512일 기자회견에서 백악관 대변인은 우크라이나 법을 위반한 것이고 명백한 분열과 무질서를 낳는 행위라고 비난했다.

문제 있는 사람들이 투표를 하면 그것은 분열과 무질서를 낳는 것으로 보인다.”

제국주의 나팔수들이 이른바 국제법위반이라며 떠들어대지만, 인민들의 정서를 분명하게 반영한 그 결과에 대해 맑스주의자들은 비난할 거리가 없다. 사실 크림의 우크라이나 군부 인사들 역시 키에프가 아니라 모스크바를 선택했다.

그 당시 국방장관이었던 스보보다 회원 이호르 테뉴크에 따르면, 기지에 주둔하던 18,000명의 1/3 가량이 되는 약 6,500명의 우크라이나 병사들과 그 가족들이 크림을 떠났다. 나머지 2/3와 그 가족들은, 지난 주 러시아연방이 합병한 크림에 머무는 것을 선택했다. ‘우크라이나 군대에서 복무하기를 희망하는 4,300명의 공무원과 2,200명의 가족은 떠날 것이다.’라고 테뉴크는 말했다.”가디언, 2014325

푸틴은 크림투표 이후, 국제법 해석에 대한 나토의 비일관성을 지적했다.

게다가, 크림의 당국자들은 잘 알려진 코소보 사례를 든다. 세르비아로부터 코소보의 일방적 분리를 결정했을 때, 그에 동의한 서방 동맹자들이 매우 비슷한 조건 속에서 자신들의 손으로 만들었던 그 코소보 말이다. 그것은 정당했고 국가 중앙권력으로부터 어떤 허락을 받아야 하는 일이 아니었다. 크림이 지금 하고 있는 것은 바로 그 같은 일이다. 유엔헌장 12조에 따라, 유엔국제법원은 이 같은 접근법에 동의했다. 인용을 해보겠다. ‘독립선언과 관련하여 안전보장이사회의 실천으로부터 어떤 일반적인 제약도 끌어낼 수 없다.’ 그리고 국제법 일반은 독립선언에 대한 금지를 담고 있지 않다.’ 이 구절들이 말하는 것은 명백하다.

나는 인용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지만, 이 경우에는 그럴 수밖에 없다. 자 여기 다른 공식문서에서 인용한 구절이 있다. 2009417일 미합중국의 성명이 같은 코소보 청문회 관련한 유엔국제법원에 제출되었다. 인용하자면, ‘독립선언은 아마도 때로는 종종 국가법을 위반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국제법 위반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이것을 작성하고 세상에 널리 알렸다. 그 당시에는 모두가 동의했다. 그런데 지금은 분개한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BBC, 2014319

푸틴은 크림과 코소보에 대해서 제대로 지적한다. 그러나 맑스주의자는 민족자결권을 러시아연방을 떠날 것을 분명히 원하는 체첸 인민에게도 확대해야 한다. 이 경우에 러시아정부는 분리주의자들을 야만적으로 억압하고 있다.

크림 사건으로 러시아가 국제적으로 고립되었다고 서방 언론이 자축하고 있지만, 사실 세계의 많은 부분이 푸틴 편에 섰다.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그리고 남아프리카 등 소위 BRICS 소속 나라들은 크림에 대한 러시아의 입장을 강력히 지지한다.

대부분의 소속 나라들이 서방의 식민지이거나 유사 식민지였기 때문에, BRICS는 민족자결권은 이른바 인도주의와 비확산 원칙보다 나중이라는 서방의 주장을 믿지 않고 있다. the BRICS는 소위 인도주의와 반()팽창이라는 보편 원칙이 주권에 앞선다는 서방의 주장을 무척 미심쩍어한다. 그들은 2011년에 리비아 정부를 전복한 카다피 반대파를 위해 비행단을 띄우겠다는 나토의 결정에 대단히 비판적이었다. 또한 나토가 시리아의 바사르 알 아사드 정부를 전복하려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Diplomat [Tokyo], 2014331

<포린어페어스> 201411월 호에서 리차드 하스 편집장은, 나토가 내세우는 대외명분의 약발이 떨어지고 있다고 암시한다. “보호의무라는 명분은 더 이상 광범한 지지를 얻지 못한다. 그리고 다른 나라 사안에 대한 개입을 정당화하는 공통의 동의도 없다.” 제국주의 선전의 뻔뻔스러움은 상당히 널리 인식되고 있다.

브라질 사람들은 그 원칙적 수사에도 불구하고’ 2002년 베네수엘라, 2009년 온두라스, 2013년 이집트에 등장한 정통성 없는 쿠데타정권을 서방이 즉각 인정했을 뿐만 아니라, ‘예를 들면 바레인에서, 폭압적 정권이 저항운동을 진압할 때 적극적으로 그 정권들을 지지했다.’라는 사실을 떠올린다. 사태를 지켜보는 브라질 사람들은 묻는다. ‘2003년 이라크 침공을 통해 미국이 국제법을 어겼을 때 왜 아무도 G8에서 미국을 배제해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았는가? 왜 이스라엘 핵무기는 조용히 수용되면서 이란은 국제적으로 따돌림 당해야 하는가? 왜 미국에 협조적인 나라에서 일어나는 민주적 정당성 결여와 체계적인 인권 침해는 허용되면서 다른 나라의 것은 문제 삼는가?’”German-Foreign-Policy.com, 20141210

 

동부의 반란

키에프에 들어선 새 정부에 대한 반감은 크림에서 가장 큰데, 비슷한 정서가 남동부 전역에 퍼져있다. 특히 쿠데타 반대자들이 그들 자신의 저항을 조직하기 시작한 산업지대 (도네츠크와 루한스크 지방으로 구성된) 돈바스 지역이 그렇다. 20144월 도네츠크와 루한스크에서 반대자들이 인민공화국을 선포한 이후, ‘우크라이나의 통합의지를 표방한 중앙정부는 테러작전을 개시했다.

동부 반란군과의 전투를 위해 파견된 우크라이나 정규군은 열성을 거의 보이지 않았다. 반란자들에 대한 공감을 종종 표출하기도 했다. 파견부대 전체가 그들의 진압 대상과 합쳐 버린 경우도 있었다.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새 정권은 대부분 마이단시위에 참가했던 극우깡패들로 충원된 국민방위대(National Guard)를 창건했다. 키에프 새 권력의 파시스트적 성격은 영국 보수 신문인 텔레그래프 2014811일자에 설명되어 있다.

“20143월에 공표되어 러시아의 후원을 받는 도네츠크와 루한스크 인민공화국을 짓밟기 위한, 키에프의 자발적 준군사조직의 투입은 유럽의 등골을 오싹하게 했을 것이다. 최근 그들의 지휘 아래 수천 명의 병력으로 돈바스, 드니프로 그리고 아조프 같은 지역에서 구성된 부대는 공식적으로는 내무장관의 통제 아래 있지만, 재정적으로 그 부대들이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는 불분명하다. 그 부대들의 훈련은 불충분하고 그 사상은 걱정스러울 정도이다. 아조프 부대의 병사는 네오 나치의 문장을 사용하고 백인우월주의 유대 인종주의자들이다.”

이러한 성격으로 볼 때 동부 진압 작전이 추악한 국수주의로 점철되어 있는 것은 놀랄 만한 일이 아니다.

동부 우크라이나의 운동에 대한 반인도적 표현이 널리 퍼지고 있는 것은 우려할 만한 일 가운데 하나이다. 소련 사람들이 위대한 애국전쟁이라고 부르는 전쟁에서 나치에 대한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검은색과 주황색을 띤 성 조지 리본(St George’s ribbon)’을 자신의 상징으로 삼은 사람들이 있다. 극우들은 이들 동부 우크라이나인들을 콜로라도딱정벌레[동부 우크라이나인들의 리본과 비슷하게 검은색과 주황색 줄로 된 등껍질을 한 벌레]’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이제는 그것이 주된 흐름으로 강력히 자리잡고 있다.”Ishchenko, op. cit.

201452, 키에프 저항세력이 오데사의 극우들을 피해 어떤 건물로 숨자, 극우들은 그 건물에 불을 질러버렸다. 40명 이상이 살해당했는데, 몇몇은 총에 맞고, 몇몇은 타 죽고 나머지는 탈출하다가 맞아죽었다. 이 잔혹한 학살은 키에프의 초토화 작전이 지닌 잔인한 사이코패스 성향으로 인한 것이고, 그 장면이 기록되어 인터넷에 올려져있다.

그 반대급부로, “스로비안스크의 무장 점령을 조직한 잘 무장된 러시아 지원군의 도착과 더불어”, 반란 진영엔 반동적 러시아 민족주의가 퍼져있다.

이들 대다수는 매우 보수적 관점을 지닌 극우 러시아 민족주의자이다. 그들의 목표는 돈바스 그 이상이다. 그들에게 키에프는 러시아 도시들의 어머니이고 그들은 동부만이 아니라 우크라이나의 더 넓은 지역을 병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도네츠크 인민공화국의 이념적 양상을 결정하는 데 크게 영향을 주고 있다. 예를 들어 모스크바정교회는 도네츠크공화국의 국가교회로 승인되었고, 임신 때부터 인간의 권리의 방어가 시작되어야 한다는 논리로 도네츠크헌법은 낙태를 금지했다. 분리주의자들이 과거 소비에트 연방을 인정한 것은 초강대국 미국과 경쟁할 위대한 조국 건설이라는 제국적 이상에 기초한 것이었다. 그 유산의 사회주의적 요소는 대단히 약하다. 몇몇 좌익들은 도네츠크공화국이라는 지향을 표현하는데 그들이 국유화를 옹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의 헌법은 국가소유가 아니라 사적소유를 우선시한다.”이셴코, 앞의 글

제국주의 언론은 처음부터 돈바스 저항군을 러시아의 하수인으로 다루었고 그에 대한 대중적 지지를 무시했다. 러시아가 무기와 지원병을 공급하기는 하지만, 동부의 분리주의자들이 자기 방어를 위한 전사들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정당한 것이다. 스테판 코헨이 다음과 같이 지적하듯이.

그들이 전투를 시작하지 않았다. 그들의 정부보다 더 정통성을 가지고 있지도 않은 정부에 의해 그들의 땅이 침략 당하고 유린되었다. 그들 두 지방은 압도적 다수가 참여하여 지역 총투표를 실시했다. 다른 테러리스트와 달리 그들 자신의 공동체 바깥에서는 전투행위를 전개하지 않았다.”The Nation, 2014630

도네츠크와 루한스크 인민공화국의 지도자들은 푸틴의 권고를 무시하고 키에프 대통령선거 2주 전인 2014511일 총투표를 실시했다. 돈바스 투표자들은 키에프의 새 정권에 압도적으로 반대했다. 총투표 문구의 애매함으로 인하여, (모스크바가 원하는 대로) 연방 형태의 우크라이나에 소속될 것인가 아니면 (분리주의 지도부 대부분이 원하는 대로) 러시아와 전면적으로 통합할 것인가는 모호하게 남았다. 민족성에 대한 그 지역의 태도는 전통적으로 양가적이었다.

돈바스의 또 다른 특성은 역사적으로 지역과 직업 정체성에 비해 민족 정체성이 상당히 낮다는 점이다. 그들은 항상 민족적으로 혼합되어 있었고, 그것은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았다. 그들은 항상 우선적으로 자신들을 돈바스 사람 또는 광부들이라고 여겼다. 서부 우크라이나에서는 문제가 전혀 다르다. 민족 정체성은 훨씬 더 의미 있게 다루어진다. 이것은 돈바스 인민들이 우크라이나 민족주의를 왜 거부하는지를 설명해준다. 그것은 그들에게 완전히 낯선 것이다. 반데라를 숭상하는 극우 조직들에 대한 마이단의 관용 또한 동부 인민들을 결집하게 한 요소였다.”이셴코, 앞의 글

우크라이나의 가장 부유한 족벌이자 분리주의자들에 반대한 야누코비치의 오랜 후원자인 리나 아크메토프는, 30만 명에 달하는 그의 고용인들을 설득하여 키에프 새 정권에 순응시키려는 목적으로 현장 모임을 연이어 열었다. 노동자들은 그다지 설득되지 않았다.

질문을 받은 대부분은, 지금의 상황이 직장과 지역 안정에 영향을 줄 것이라고 걱정은 하면서도, 도네츠크인민공화국을 지지한다고 대답했다.

공장노조 위원장 블라디미르 사도보이는 일부는 러시아와 통합을 바라고 일부는 우크라이나에 남기를 원한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은 현 키에프 정권에 반대한다.’라고 말했다.”Guardian, 20 May 2014

동부 반란군에 대한 모스크바의 태도에 대해 보리스 카갈리츠키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크렘린은 두 가지 문제에 직면했다. 한편으로 그 운동이 사회주의혁명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을 저지해야 한다. 반란에 가담한 노동자들은 여러 기업들을 장악하고, 국유화를 요구하며 반족벌적이고 반자본주의적 구호를 외치고 있다.
루한스크와 도네츠크에서 공화국 지도자들은 사회주의적 요소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지속적으로 천명한다. 실질적으로 모든 것은 아직 말에만 머무르고 있다. 그러나 도네츠크에서 제기된 요구들은 우크라이나-러시아 국경의 다른 편에서도 분명한 지지가 형성되고 있는 한편, 그 언사들은 아래로부터 점증하는 압력을 축적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키에프 정부에 맞서 전쟁을 지속하여 현 우크라이나 정부를 타도하는 것을 승리라고 생각하는 급진주의자들을 제지할 필요가 있다. 지금 존재하는 모스크바와 키에프 사이의 마찰로 인해, 현 정권을 유지하는 것이 러시아의 가장 중요한 우선적 정책 목표이다. 페트로 포로셴토의 족벌 정권은 다소간 이해 가능하고 예상 가능하다. 그 몰락은 자동적으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모두 현질서의 생존에 의문을 던지며, 어디로 향할지 모르는 변화를 낳을 것이다.”Links, 20141110

카갈리츠키에 따르면, 20148월 하순 크렘린은 당근과 채찍 전략을 통해 반란군에 대한 실질적 통제력을 손에 쥐었다고 한다.

식료품 무기 탄약 공급의 증감과 어떤 부대에 공급하고 아닐지를 조절하는 방법으로, 그리고 불만자들은 협박하고 잘 따르는 자들은 격려하면서, 러시아 정부는 차츰차츰 그들이 원하는 형태를 만들어가고 있다.”같은 글

돈바스 인민 다수는 (분리하든, 자율권을 누리든) 다른 부르주아 국가권력 틀이 더 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은 우크라이나의 일부로 남기를 원하지만, 그들을 향해 살인적 대테러 작전을 수행하는 자들이 요구하는 조건은 원하지 않는다.

민족적 (그리고 준민족적이거나 공동체적) 갈등 문제에 대한 맑스주의자들의 접근은, 가장 민주적 방식으로 차이를 해소하는 것이다. 그것은 보통, 억압 국가로부터 분리를 원하는 종속 인민의 소망에 응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민족자결권의 행사를 지지하는 것은 더 작은 민족 단위를 원해서라기보다는, 그것이 민족적 적대를 없애는 데에 더 빠른 길이기 때문이다. 몇몇 경우는 계급적 갈등을 더욱 진전시키기 위해 (그리하여 나중의 자발적 통합의 길을 잘 닦기 위해) 인민의 분리 독립이 필요하다.

레닌주의자는 키에프의 통제로부터 벗어나려는 돈바스 인민의 열망에 반대할 이유가 없다. 그들의 분리 독립은 다른 어떤 인민에게도 위협이 되지 않을 것이다. 동부 우크라이나의 유혈 갈등에서, 억압자인 민족주의 통합주의자들에 맞선 토착 러시아어 사용자들의 저항을 우리는 군사적으로 지지한다. 전자가 그들의 공격에 파시스트들을 앞장세우고 있다는 사실은 결정적 고려사항이 아니다. 왜냐하면 키에프 세력에 저항하는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정도로 혐오스런 정치노선을 가진 극우 러시아 민족주의자이기 때문이다.

 

IMF의 우크라이나 약탈 계획

키에프의 새 정권에 대한 민심 이반은 문화적이고 역사적 차이와 더불어 물질적 이해에도 기초하고 있다. 인민에 막대한 고통을 안겨주려 하는 IMF와 협약을 체결했다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보나마나, 우크라이나의 보통 사람들이 패배자가 될 것이다. 해외의 세금 도피처에 수십 억 달러를 자유로이 보낼 수 있는 족벌들과 달리, 소위 개혁조치를 위해 그들이 지출해야하기 때문이다. 최고의 수혜자는 현금 투기꾼들이 될 것이다. 긴축조치를 통해 채권을 회수할 서방의 은행들과 20145월에 서명된 유럽연합 가입 협정 아래 우크라이나 시장과 값싼 노동력에 접근하게 된 할 수 있는 유럽 회사들 또한 그 수혜자가 될 것이다.”The Nation, 20144

IMF구조 조정계획은 붕괴된 우크라이나 경제를 재건하는 것으로 시작하겠다는 시늉조차 하지 않는다. 1991년 반혁명 이후 국가 자산을 뭉텅이로 차지한 족벌들은 나라의 살점을 떼내는 국제 금융자본가들의 현지 하수인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우크라이나 지도자들은 대체로 도둑놈들이다. 그들의 목적은 나라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권력을 키우는 것이다. 조지 소로스[미국의 유명한 금융자본가]는 그 목적을 이루는 최선의 길은 서방 파트너를 구하는 것이라고 쓴 바 있다. 이것은 그 도둑놈들 배후에 있는 미국과 유럽인들의 경제 장악력을 강하게 할 것이다. 서방의 지지는 IMF와 유럽 자본가들로 하여금 통화를 떠받치기 위해 더 대출하게 할 것이고 그러면 우크라이나의 족벌들은 영국 은행이나 미국 은행 등 서방으로 자신들의 돈을 안전하게 옮길 수 있을 것이다.”마이클 허드슨 인터뷰RT, 201477

족벌들과 그들의 외국 파트너들은 잘 나갈 것인 반면, 노동인민은 줄어든 임금과 연금, 더 높아진 세금과 난방비를 만나게 될 것이다. IMF 계획서의 중심엔 공공자산의 사유화가 있다.

경제는 이제 도로요금소 경제로 바뀌었다. 지금까지의 무료 공공도로는 유료도로로 바뀌었고, 다른 교통수단이나 수도와 하수도 시설 또한 사유화되었다. 이로 인해 생활비가 올랐고 노동비용도 상승했다. 한편 시장을 위축시키고 실업을 늘린 재정 긴축으로 인해 임금수준은 짜부라 들었다.”같은 글

우크라이나는 소위 자유 시장의 고통을 이미 20년 동안 겪었다. “그 동안 탐욕스러운 지도자들은 소비에트 연방 붕괴 당시보다 우크라이나인들을 평균 20% 더 가난하게 만들었다(이코노미스트, 20141115).” 돈바스에 대한 군사작전으로 경제는 이미 험악하게 망가지고 있다.

우크라이나 공업중심지 도네츠크와 루한스크 지방의 전쟁은 이러한 실패들을 증가시켰다. 두 지방은 보통 우크라이나 GDP16%를 차지하고, [전력생산의 40%를 담당하는] 석탄의 95%를 공급하고 상당한 양의 수출품을 생산한다. 20149월 루한스크 공업생산은 전년대비 85% 가량 떨어졌고, 도네츠크는 60% 가까이 떨어졌다.”같은 글

이미 절망적인 우크라이나의 상황은 점점 더 악화될 것이다. (외화로 갚아야 하는) 140억불 부채의 만기는 2016년이다.

러시아에 대한 우크라이나의 경제적 가치는 주로 석유와 가스관의 유럽행 운송 경로라는 데에 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 더욱 중요하다. 브루킹스 연구소의 최근 연구는 그 사실을 직설적으로 지적한다. “지금 러시아는 무려 50억 달러 가량을 우크라이나에 매년 지원한다. 아마 100억 달러일지도 모른다.” 미국의 진지한경제 전문지를 읽는 독자들이나 많은 좌익 인사들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관계는 식민지에 대한 제국주의 세력의 그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는 매우 다르다.

보조금에 대해 말할 때, 우리는 보통 우크라이나에 값싼 가스를 제공할 러시아의 능력을 생각한다. 그러나 단지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경로는 다양하다. 그 핵심적 방식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중공업에 주문하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공업의 이 분야는 거의 전부를 러시아의 주문에 의존한다. 그것들은 다른 곳에는 팔리지 않을 것들이다. 우크라이나의 남부와 동부는 러시아에 있는 것과 비슷한 소비에트 시절의 낡은 기업들이 대부분이다. 그것들은 오직 (압도적으로 러시아의) 석유와 가스로 인해 유지되는 기업들이다. 러시아의 보조금으로 소비에트 이후에도 그 구조를 지탱해 왔다. 이 보조금 대부분은 비공식인 까닭에 공식통계에 잡히지 않는다. (사실 언급하는 것이 그에게 유리할 수도 있을 테지만, 푸틴조차 그것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가치 파괴적인 우크라이나 기업에 대한 러시아의 숨은 보조금의 존재가 드러나는 것은 더 커다란 규모로 진행되어 온 러시아 쪽의 문제가 드러날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 또한 실제의 가치를 생산해내지 않는다.)”—「우크라이나: 러시아나 서방 모두 차지할 수 없는 보물, 2014522

완전한 경제 붕괴의 위기에 선 우크라이나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비즈니스 인사이더> 웹사이트는 다음과 같이 보고한다.

러시아와의 깊은 경제관계는 최근 몇 달 동안 고통스런 조정 과정을 거쳐야 했다. 수출은 작년부터 달러가치로 19% 가량 하락했고 앞으로 더 떨어질 것이라고 예측된다. 우크라이나 수출이 처한 난관의 가장 대표적 사례는 소비에트 시기 대형수송기와 그밖에 몇몇 기종의 비행기 제작사로 알려진 안토노프이다.

러시아와의 군사적 협조가 끝난 이후, 안토노프는 위기를 맞았다. An-148기종을 러시아 공군에 납품하지 않았기 때문에 최근 15억 달러 가량의 손실을 입어야 했다. 러시아는 이 비행기의 대체물을 찾게 될 것이다. 그러나 대단히 경쟁적인 세계 비행기 시장에서 안토노프는 다른 고객을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2014921

GDP는 하락하고, 공공부채는 치솟고, 공업생산은 붕괴되고, 통화 잔고는 바닥나고, (우크라이나 화폐) 흐리브냐(hryvnia) 가치는 곤두박질하면서, 그 논문은 국가의 공공부채 문제는 유지될 수 없고 디폴트[채무 불이행] 가능성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라고 결론짓는다. 도탄에 빠진 인민들을 구제하거나 경제를 되살리는 데에 관심이 없는, 키에프의 나토 우방들은, 우크라이나가 빈곤한 신식민지의 하나로서, 소위 자유세계로의 완전한 편입을 추구하고 있다. 다이아나 존스톤은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우크라이나는 유럽에서 가장 많은 양의 셰일가스 매장지이다. 다른 유럽인들처럼 우크라이나인은 그들 땅에서 프래킹[환경오염 우려가 제기되는 셰일가스 추출 기술]으로 인한 환경재해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지만, 다른 나라와 달리, 우크라이나는 제한 법률이 없다. 쉐브론은 이미 개입하고 있다.
미국 부통령의 아들인 헌터 바이든은, 지난 5, 우크라이나의 가장 큰 개인 가스 생산자인 부리스마홀딩스(Burisma Holdings) 이사회에 참석했다. 헌터 바이든은 그 지주회사의 법률기관을 맡을 것이고 국제적 확장을 위해 일하게 될 것이다.
우크라이나는 비옥한 땅과 셰일가스를 가지고 있다. 미국의 거대농업기업인 카길은 특히 우크라이나에서, 노보로시스크에 있는 흑해항구와 곡물창고 동물사료와 대규모 달걀 생산을 하는 농업회사인 우크랜드파밍(UkrLandFarming)이란 회사에 투자하는 등 활발히 움직이고 있다. 아주 역동적인 미국-우크라이나 사업협의회엔 몬산토(Monsanto), 존디어(John Deere), 농사장비 제조사 CNH인더스트리얼, 듀폰 파이오니아, 엘리릴리앤드컴퍼니(Eli Lilly &Company)가 소속되어 있다. 쉐브론이 후원한 미국-우크라이나 사업협의회 자리에서 빅토리아 눌란드는 우크라이나를 손에 넣기 위해 미국은 지난 20년 동안 50억 달러를 썼다고 언급했다.”카운터펀치, 2014129

IMF 긴축정책의 완전한 실시는 2016년까지 연기되었다. 아마도 동부 우크라이나를 안정시킬 시간을 벌기 위함일 테지만, 공공자산 매각을 위한 기초 작업은 이미 착수되었다. 이 막중한 임무를 우크라이나나 그 인민에게 모종의 애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맡겨선 안 된다고 미 국무성은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3개의 핵심직책은 외국인에게 맡기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새 재무장관은, 미국 시민이며 국무성 전 직원이었고 오랜 동안 비공개기업투자펀드[투자자를 비공개 모집해 자산이 저평가된 기업에 투자, 가치를 높인 뒤 주식을 매각하는 고수익 투자 회사]를 운영했던, 나탈리에 야레스코이다. 야레스코는 키에프에 새로 개설된 미 대사관의 경제부처를 이끌기 위해” 1992년에 우크라이나에 파견되었다.

“1995년 그녀는 미국 정부가 출자한 비공개기업투자펀드인 서방NIS사업기금(Western NIS Enterprise Fund: WNISEF)에서 일하기 위해 미 대사관을 떠났고 그녀는 그 회사의 최고경영자가 되었다.
“2004년에 그녀는 호라이즌캐피탈(Horizon Capital)이라는 자신의 펀드를 창설했다.
오렌지혁명 동안, 야레스코는 친서방 봉기에 대한 지지의사를 숨기지 않았다. 그녀는 당시 대통령인 빅토르 유셴코의 외국투자고문위원회에서 일했다.”Radio Free Europe, 2014123

벌처 펀드[vulture fund: 부실 자산을 싼 값에 사서 가치를 올린 뒤 되팔아 차익을 내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투자 신탁기금]에서 일한 배경으로, 야레스코는 우크라이나 농장과 여타 유형 자산 매각을 관장할 적임자로 꼽혔다. 그녀를 지원하기 위해, 미국이 총애하는 또 다른 사람인, 리투아니아 은행가인 아이바라스 아브로마비시우스가 경제장관으로 임명되었다. 아브로마비시우스는, “2012년에 거의 1억 달러를 우크라이나에 투자한 경제 주역 중 하나라고 RFE[자유유럽라디오(Radio Free Europ): 냉전 당시 소련/동유럽 선전을 목적으로 설립된 라디오방송기관]가 묘사한, “자산관리 기업인 이스트캐피탈에서 펀드매니저와 사업파트너였다.

세 번째로 임명된 외국인인 알렉산더 크비타쉬빌리는 미국에서 훈련 받고, 2003년 이른바 장미혁명을 통해 그루지아 권력을 장악한 미국 하수인, 미하일 사카슈빌리 대통령 내각에서 보건부장관이 된 자이다. 우크라이나 말을 못하고 그 나라에 살아 본 적이 없는 크비타쉬빌리는, RFE에 따르면, “보건행정 내에 만연한 부패를 차단할 전면적 개혁조치를 도입하겠다고 약속하고 있다. 다른 말로 바꾸면, 보건 분야에서 더 많은 고혈을 짜낼 것이라는 것이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보건은 이미 처참하다.

“[세계보건기구 우크라이나 대표] 니트잔 박사는 보편적 의료서비스는 오직 종이 위에만 있다.’라고 말한다. ‘인민은 의료서비스의 많은 부분을 지불해야 하고, 약을 알아서 구해야 하며 정해진 가격이 없다.’라고 그녀는 덧붙인다. 전쟁과 재정 위기는 가난한 사람들을 더 가난하게 만들었다. 그들은 의료서비스, 약 또는 백신주사에 거의 접근할 수 없다.”WHO, 20141210

 

러시아 경제를 망가뜨리기 위한 제국주의 제재

동부 우크라이나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겠다는 공약을 내걸며, 2014년 대통령으로 뽑힌 초콜릿 족벌 페트로 포로셴코는 당선되자 즉각 그 공약을 어기고 반란군을 진압하기 위한 노력을 배가하였다. 동부를 장악하기 위한 명목으로 IMF170억 달러를 제공한 바 있으므로, 이는 전혀 놀랄 만한 일이 아니다. 민간인 거주 지역 포격과 극우 기습부대 투입은 키에프 정권이 돈바스 지역 민심을 달랠 생각이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반란군의 패배를 원치 않는 러시아 정부는 현 상태를 유지하기에 충분할 정도의 지원을 은밀히 제공하고 있다.

스스로를 광의의 러시아 공동체 소속이라고 생각하는인민의 학살을 막을 명목으로만 접경 지대에 러시아 병력을 투입할 것이라고 푸틴은 공언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에서 그의 목표는 돈바스 지역 자치를 보장할 약속을 얻어내는 것이다. 군사 갈등이 더 길어지면 러시아와 그 제국주의 유럽 파트너는 잃을 것이 많지만, 유럽-러시아 간 무역의 1/10 정도밖에 되지 않는 미국은 별로 잃을 것이 없고, 유럽과 러시아 사이를 더 벌리는 일에 힘을 쏟고 있다.

20147, 말레이시아 MH17기가 격추되면서 298명의 사상자를 내었을 때, 제재 수준을 높이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던 유럽연합은, 최소한 당분간은, 제재에 어쩔 수 없이 가담해야 했다. 미국 정부는 돈바스 반란군과 러시아를 즉각 비난했지만, 그 사건은 제국주의 조언자와 공모한 키에프 정권이 저지른 조작 사건일지도 모른다. 어찌되었건, MH17기의 추락으로 미국은 EU로 하여금 더 가혹한 제재에 참여하게 만들 수 있었다.

러시아 경제에 타격을 가하고 러시아 정부가 우크라이나 분리주의자 지지를 포기하도록 할 목적의 경제제재 전면화를 EU가 선언하자, 미국은 새로운 페널티를 러시아에 가했다.”

오바마 행정부의 강력한 압력에도 불구하고, 몇 주 전까지, 미국과 유럽연합은 러시아를 상대한 정책들에 대하여 서로 큰 입장차가 있었다. 그러나 미국이 친러시아 분리주의자의 소행이라고 비난한, 2주 전의 말레이시아 항공기 격추 사건 이후, 그 차이는 빠르게 좁혀졌다. Financial Times, 2014729

2014729일자 뉴욕타임스는 그 조치들은 러시아정부의 부와 힘의 원천을 겨냥하여, 새 석유 자원을 개발할 러시아의 장기적 능력을 가로막는것이 목적이라고 솔직하게 분석했다.

러시아에 상당히 많이 투자하고 2013년에 총 360억 유로 상당의 상품을 수출한 독일 자본가들은 그 경제제재를 강력히 반대해 왔다. 201488일 논설에서, 독일 유력 경제신문인 한델스블랏(Handelsblatt) 발행인 가보르 슈타인가르트는 독일과 미국의 정치적 이해의 차이를 날카롭게 대조하였다.

협박을 가장한 행동은 단지 [미국의] 선거를 위한 준비에 불과하다. 힐러리 클린턴이 푸틴을 히틀러에 비교하는 것은 세상 물정을 잘 모르는 공화당 지지자의 표를 얻기 위한 것이다. 그들에게 히틀러는 그들이 아는 유일한 외국인이고, 그것이 푸틴 혐오 캠페인으로 만든 아돌프 푸틴이란 말이 환영받는 이유이다. 이런 관점에서 클린턴과 오바마는, 국민들에게 호소하고 선거에서 이겨 민주당 대통령을 다시 창출하자는, 실제 목표를 가지고 있다.
앙겔라 메르켈에겐 이와 같은 정상참작 요인이 거의 없다. 지리적 상황은 모든 독일 수상들로 하여금 보다 신중해지게 만든다. 유럽 공동운명체의 일원이고 러시아의 이웃 나라이며 이 나라 저 나라로부터 에너지를 공급받는 처지에 있는 우리 독일인들은 안정과 대화에 더 간절한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미국 티파티(Tea Party)[미국 공화당 내의 강경보수 의견그룹]의 시선으로 러시아 문제를 볼 수 없다.”Handelsblatt, 201488

독일 부르주아지는 우크라이나를 나토의 완충지대로 유지하기 위해 러시아를 지지해 왔다. 2008년 미국이 나토 회원국 후보 명부에 올리자고 제안했을 때, 메르켈은 반대했다. 그녀는 포로셴코가 그 주제로 국민투표를 열겠다고 한 201411월에도 역시 반대했다.

독일 산업은 포로셴코의 계획을 우려한다. 나토를 향한 그의 지향은 러시아-우크라이나의 관계를 더 악화시킬 것이라고, 러시아와의 사업을 촉진하는 독일 동구무역위원회(Ost-Ausschuss) 수장인 라이너 린드너는 함부르크에서 말했다. 그것은 우리가 보고 싶지 않은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Bloomberg, 20141126

2014121일 푸틴은 우크라이나를 경유하지 않고 러시아 가스를 남유럽으로 공급할 사우스 스트림(South Stream) 가스관을 취소한다는 깜짝 발표를 했다. 이미 협상된 약정에 새로운 조건의 소급 부과를 EU가 시도한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관측자들은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권력 다툼과 가스관 건설을 지연시키려고 불가리아에 대해 갑작스레 상승시킨 유럽연합과 미국의 압력 사이의 상관관계를 발견한다. 불가리아는 사우스 스트림으로 상당한 이득을 얻을 것으로 예상된다.”German-Foreign-Policy.com, 2014123

사우스 스트림은 흑해를 지나 불가리아, 세르비아와 헝가리를 거쳐 오스트리아 집결지에 이르도록 계획된 것이었다. 거기에서 가지를 뻗은 가스관들은 슬로바니아 이탈리아 그리고 크로아티아에 이르도록 계획되었다. 미국의 오랜 공작으로 폐기된 그 계획은 EU를 엿먹였다.

사우스 스트림은 이탈리아 ENI[Ente Nazionale Idrocarburi:이탈리아석유공사]20%의 지분을 갖는 등 (가즈프롬은 50%) 이탈리아가 관심을 갖던 사업이었다. 하지만 프랑스 EDF[Electricite de France: 프랑스전력공사]와 독일 윈터쉘[Wintershall: 독일석유회사]도 각각 15%씩의 지분을 가지고 있다. 독일인 게르하르트 슈뢰더는 노스 스트림 이사회장이고 다른 독일인 헤닝 보쉐라우는 사우스 스트림의 이사회장이다. 이 계획이 실행된다면 유럽 가스공급에 대한 독일의 영향력이 확장될 것이었다.”같은 글

러시아는, 이제 대부분의 가스를 러시아에 대서 쓰는 터키로 사우스 스트림이 방향을 틀도록 계획된, 가스관 초기 구간 건설에 이미 45억 달러를 쏟아 부었다. 새로운 계획이 실시되면 터키로 가는 양은 지금보다 4배가 될 것이고 그러면 터키가 유럽연합의 핵심 분배기지가 될 것이다. 그러면 터키의 영향력은 크게 증가할 것이고 터키와 러시아 사이의 관계는 더 밀착될 것이다. 터키가 나토 회원국이고 러시아의 동맹국 시리아의 정권교체작전의 협력자이긴 하지만, 2013년 이집트 군사쿠데타를 둘러싸고 미국과 날카로운 차이를 노정하기도 했었다. 만약 가스관 계약이 성사되면, 러시아에 대한 미국/EU 제재에 참가하지 않는 조건으로 터키는 상당한 배당금을 챙기려 할 것이다.

EU는 사우스 스트림의 폐기가 되돌려질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독일은 아직도 모스크바와 협약을 맺기를 원한다.

독일 경제장관 지그마르 가브리엘(사민당)유럽 전체는 그 계획이 소멸되지 않았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는 러시아, 우크라이나 그리고 유럽연합의 상황이 다시 안정되고 대화가 재개되기를 바랄 수밖에 없다.’라고 덧붙였다.”German-Foreign-Policy.com, 2014123

 

세계 석유가격의 지정학

2015년에 5%의 성장이 기대되었던 러시아 경제는 석유가격의 급격한 하락으로 경제제재보다 더 큰 타격을 받았다. 세계 최저의 비용으로 생산하는 사우디아라비아는 예전처럼 석유 생산을 억제하여 가격을 떠받치지 않았다고 비난 받고 있다.

사우디 왕국은 최근의 석유 전쟁에서 두 목표를 가지고 있다. 전통적 생산과 경쟁하려면 더 높은 가격을 유지해야 하는, 미국의 셰일 석유를 압박하여 시장에서 쫓아내려는 것이다. 더 넓게는, 시리아 내전에서 바사르 알 아사드 정권을 지지하는 러시아와 이란이라는 두 경쟁자를 혼내주려는 것이다.”Reuters, 15 December 2014

강력한 미국 석유압력단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사우디의 행동을 승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동맹국 사우디의 도움으로, 이미 약해진 시장에 원유를 쏟아 붓는 방식으로 석유가격을 끌어내리려 한다. 러시아와 이란인들은 석유수출에 크게 의존한다. 그들을 다루기 더 쉬워질 것이다.
미 국무장관 존 케리가, 사우디가 일반적 시장가격보다 싸게 원유를 파는 조건으로, 압둘라 왕과 20149월에 계약을 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슬람국가로 인해 시리아와 이라크가 혼란스러운 가운데, 보통이라면 가격이 상승해야 하는 때에, 가격이 왜 떨어지는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Guardian, 9 November 2014

논평가 마이크 휘트니가 지적하듯이, 이 정책은 커다란 위험 없이 미국 경제를 높이 떠받치기 위한 것이다.

석유가격의 폭락은 에너지회사들로 하여금 부채상환을 연장하거나 현재의 사업을 유지하기 위한 자금을 얻기 어렵게 만든다. 얼마나 보유하고 있는지에 따라 회사들은 융자를 얻는다. 그러나 지난 6개월간 그랬던 것처럼 50% 가까이 떨어졌을 때 보유량의 가치는 급격히 떨어지고 시장 접근 기회가 축소될 것이다. 최고경영자는 자산을 폭탄세일 가격으로 팔아야 할지 아니면 파산해야 할지를 우울하게 선택해야 할 것이다. 일정한 틀 내에서 문제가 한정된다면,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에너지회사의 실패가 금융 체제에 파급되고 그것이 은행들을 강타할 것을 월가는 걱정하는 것이다.”카운터펀치, 20141217

 

러시아의 아시아 중심축: ‘새 비단길을 따라가다

미국이 단지 여러 열강 가운데 하나일 뿐인 다극정치체제라는 러시아의 목표를 중국 관료는 공유한다. 2013년에 시진핑 주석은 카자흐스탄을 방문하여, 중국에서 시작하여 중앙아시아를 지나 유럽에 다다르는 새 비단길 경제벨트건설 계획을 발표했다. 한 달 뒤 그는, 중국 남동아시아 그리고 벵골만() 지역의 주요 항구들과 특별 경제구역을 아우르는, 미래의 바다 비단길을 구상했다. 이 계획은 도로 고속열차 에너지파이프라인 그리고 해양시설의 새로운 네트워크를 건설하여 유라시아의 경제적 통합을 크게 증진시킬 것이다.

중국은 이미 500억 달러에 달하는 에너지와 사회기초시설 계약을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키르기즈스탄 그리고 타지키스탄 등과 체결했다. 스리랑카는 14억 달러를 해상운송을 개발하기 위해 할당했다. 동유럽 또한 예비작업을 시작했다.

유고슬라비아의 베오그라드에서 루마니아 부쿠레슈티로 이어지는 고속열차에 투자하기로 한 중국의 협약은, 특히 에너지와 사회기초시설 부문에서 이번 주 중국과 중부/동부 유럽 정상회담 동안 체결된, 100억 달러 상당의 투자 중 하나이다.”bne IntelliNews, 20141218

대만의 원트 차이나 타임즈(2014916)는 계획된 총투자 금액은 깜짝 놀랄 만큼 어마어마한 21조 달러에 달한다고 보도했다.

실적을 낸다면, 비단길은 실질적으로 유라시아 대륙 전체를 상대로 한 중국교역을 부흥시킬 것이다. 한편, 중국이 필요 사회기초시설 개발을 위해 자금을 배당한 가운데, 광대한 무역망은 중국을 위험한 나라로 보기보다는 이익을 안겨주는 후원국으로 바라보는 정부들의 수를 늘릴 것이다.
중국 경제력은 크게 상승하고 있다. 그리고 여전히 늘고 있다. 중국은 자연히 외교의 영향력을 증진하기 위해 유리한 금융 상황을 이용하려 할 것이다. 중국의 비단길 경제벨트와 해양 비단길을, 2차 대전 이후 미국이 실시한 마셜플랜에 비교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두 경우 모두, 떠오르는 열강은 자신의 경제력을 (자신의 국내경제를 유지하는 기본적인 목표와 더불어) 외교 목표를 달성하는 데에 이용하려 한 것이다.”The Diplomat, 2014116

201410월의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기구(Asia-Pacific Economic Cooperation: APEC)의 참석자들은 중국의 아시아-태평양 자유무역지대를 승인했다. 이에 맞선 미국의 12개 나라가 참여하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rans-Pacific Partnership: TPP) 제안은 그다지 환영받지 못했다. 21개국은 중국이 초기 투자기금인 500억 달러의 절반을 대는 아시아사회기초시설투자은행(Asian Infrastructure Investment Bank: AIIB)의 설립에 동의했다. 최근 설립된 BRICS개발은행처럼, AIIB는 중국에 본부를 차릴 것이다. 둘 모두는, IMF와 세계은행 그리고 미국이 지배하는 국제 금융기관들로부터 독립되어, 사회기초시설 계획에 자금을 댈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중국은 아시아의 기존 열강인 미국과 일본을 대신하여 자신의 영향력을 늘리는 데에 이 새 은행을 이용할 것이다. 기존의 것을 이용하기 보다는 새로운 다자간 은행 설립에 자금을 대겠다는 중국의 결정은 너무나 굼뜬 세계 경제지배 구조 개편에 대한 짜증을 반영하는 것이다. 같은 동기가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공 등 BRICS의 새개발은행(New Development Bank) 설립의 배경이기도 하다.”Economist, 20141111

경제 제재를 통해 러시아를 굴복시키려는 미국의 시도는, 수십 년 동안 중국에 가스를 공급하겠다는, 러시아의 총 7,000억 달러에 달하는 두 거대 계약으로 반격 당했다.

두 번째 대규모 계약으로 한층 깊어진 중국과 러시아의 에너지 관계는 러시아의 유럽에 대한 의존을 경감할 것이고 2020년 경 중국이 필요로 하는 1/5 가량의 가스를 확보하게 할 것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시진핑은 가스공급 예비계약을 베이징에서 체결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베이징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 정상회담에 참석하고 있을 때였다. 그 계약은 러시아가 크림을 합병한 직후에 체결된 4,000억 달러 협약보다 약간 적은 규모였다.

공급이 시작되면, 우크라이나 위기를 둘러싸고 미국, 유럽과의 관계가 악화되고 있는 시점에서도, 중국은 러시아 최대 시장인 독일을 대신하게 될 것이다.”Bloomberg, 20141110

러시아가 가격에 양보한 한편, 그 계약은 러시아와 중국 관료집단 사이의 전략적 동맹 구축을 표현하는 것이다. 이것은 201412, 루블화를 하락시키고 러시아 투자자들을 패닉에 빠뜨리려는 미국의 시도에 맞서, 러시아정부에 경제신용을 확대하겠다고 중국이 제안했을 때, 표현되었던 것이다.

공산당 소속 베이징 일간지 글로벌타임스의 오늘의 논평은, ‘러시아는 국제 무대의 대체할 수 없는 협력자이다. 중국은 러시아가 지금의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돕는 태도를 반드시 취해야 한다.’라고 말했다.”Bloomberg, 20141222

페페 에스코바가 분석하는 것처럼, 만약 비단길 계획이 진전되면 (그것은 진짜 만약의 상황인데), 그로 인한 인력은 유럽연합 공동체의 대주주인 독일 제국주의의 우선순위를 재편성하게 될 것이다.

독일의 지리적 이해는 미국의 이해와 조금씩 어긋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독일 자본가들은 특히 러시아 그리고 중국과의 무역관계를 제한 없이 늘리길 열망한다. 그 이해는 유럽 지역에 한정되지 않는 열강의 길로 독일을 이끌 것이다. 장기적으로 이것은, 공손하게 다루어지긴 하지만, 독일이 미국의 실질적인 위성국으로 지내는 상황이 끝났다는 신호가 될 것이다.”
그것은 길고 구불구불한 길이다. 독일 의회는 [미국과 서유럽과의 긴밀한 협력을 주장하는] 대서양주의에 강하게 중독되어 있고, 미국에 알아서 순종한다.”TomDispatch.com, 2014105

2014103일 미국 부통령 조 바이든은, 미국의 유럽 동맹국은 “EU가 경제적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우려 때문에 러시아에 대가를 치르게하려는 계획을 꺼리고 있다고, 솔직하게 인정했다.

우리는 줄곧, ‘우크라이나의 주권을 존중할래 아니면 점점 커질 대가를 치를래?’라고 하는 단순한 선택지를 푸틴에게 내주었다. 그것은 진짜 대가를 러시아에 부과할 세계 주요 선진국들을 결집하게 했다.
그들이 원하지 않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다시 그것은 때때로, 유럽을 어쩔 수 없게 만들어서 일으켜 세우고, 대가를 부과하기 위한 경제적 타격을 참아내도록, 미국 대통령이 고집하는 것이었고 미국의 지도력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러시아로부터의 막대한 자금 유출과 외국직접투자의 실제적 동결, 달러에 대비해 항상 낮은 가격을 유지하는 루블화 그리고 불경기의 벼랑에서 위태위태한 러시아 경제를 낳았다.”Whitehouse press office

독일 지배계급 다수는 미국의 지도력을 당분간 받아들이는 것을 선택했다. 그러나 미국의 세기를 비추던 해는 지고 있다.

독일 군사잡지 최신호에 따르면, 서방 국가들 사이의 최근의 긴장은, EU의 성장과정은 필연적으로 나토에 대한 경쟁자가 되는과정이라는 사실에서, 주로 발생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나토가 갈등으로 해체될 가능성이나 심각한 대서양 관계[유럽-미국 관계]의 파열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EU가 강력한 군사력을 갖지 않는 한, ‘기분 나쁜 것을 참아내며 미국의 능력으로부터 이득을 얻기 위한 유연한 시도를 계속해야할 것이다. 또한 서방의 헤게모니는 항상 보장되는 것이 아니라는 조건 속에서 상황을 바라보아야 한다. 러시아는 지중해에서 중국과 합동작전을 수행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하고 있고 그것은 서방 헤게모니 특권을 훼손하는 것이다.”German-Foreign-Policy.com, 2014121

 

러시아가 제국주의라는 견해에 대하여

우크라이나 사태를 바라보는 많은 좌익들은, 갈등의 근원이 지금 고개를 든 러시아 제국주의와 이미 성숙한 EU/미국 제국주의 열강들 사이에 있다는, 잘못된 전제로부터 출발한다. 고질적 인상주의자인 제5인터내셔널동맹(L5I)은 군사력을 근거로 러시아가 제국주의라는 시각을 가진 전형이다.

러시아의 전략은 분명하다. 러시아 제국주의가 결여하고 있는, 붕괴 조짐이 있는, 경제적 힘은 군사력으로 만들어질 것이다.”fifthinternational.org, 201449

L5I는 아직도 자신들이 러시아의 크림 재병합을 왜 지지하는지 또는 러시아의 후원을 받아 키에프정권에 맞서는 돈바스 반란군을 왜 지지하는지를 설명하지 않는다.

러시아 지배자들은 제국이 되고픈 야망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러시아는, 레닌이 제국주의론에서 핵심 특징으로 지적한, “나머지 다른 모든 국가 위에 우뚝 선 금융적으로 ‘강력한’ 몇몇 국가중의 하나로 규정되기 어렵다. 러시아 금융부문은 영국이나 미국 또는 독일이 아니라, 브라질과 비슷하다.

금융중심지로 거듭나려는 러시아의 시도라는 제목의, 201343일 뉴욕타임스 논설은 지역 금융 중심지로서 서방과 경쟁할 때 러시아가 겪는 어려움을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우크라이나 또는 이전 소련권의 다른 국가들의 중간 크기 회사들은 서유럽으로 가고 있다. 그들은 러시아가 깔아놓은 환영 카펫을 그다지 주의 깊게 쳐다보지 않는다.

논설은 이어진다.

메드베데프는 서방 은행 운영자들을 러시아 금융부문 개혁 위원회의 고문으로 임명했었다. JP모건체이스의 최고운영자인 제이미 디몬, 시티그룹의 전 대표 비크람 판디트 그리고 골드만삭스 대표 로이드 블랭크페인 등이 그들이다.
그러나 자문회사인 Z/Yen3월 펴낸 세계금융센터지수(Global Financial Center Index)는 모스크바를 연구대상 79개국 가운데 65위로 꼽았다. 런던이 1위이고 뉴욕이 2위 그리고 홍콩이 3위였다. 모스크바의 위치는 바레인과 뭄바이 사이에 있다.”

러시아는 2차 대전 이후 설립되어 (‘워싱턴 컨센서스같은) 제국주의 정책을 신식민지에 적용하는 국제기구들에서 거의 구실을 못한다. 러시아 은행과 회사들은 IMF ‘구조조정정책으로 실시되는 공짜나 다름없는 사유화의 이득을 거의 취하지 못해왔다. 또한 러시아 부르주아지는 약소국들을 지배하고 억압할, 분리되거나 병행적인 국가기구[NATO, WTO, 세계은행, IMF, EU 같이 한 국가에 직접 소속되어 있지 않지만 제국주의 국가의 이해를 관철시키는 기구들]를 가동하지도 못한다. 석유와 가스를 국제 가격으로 파는 것 이외에, 저개발 국가들로부터 의미 있는 크기의 부를 끌어올 수 있는 구조를 러시아는 가지고 있지 않다. 실제로 최근 몇 년 동안 러시아는, 구 소비에트 권역의 이웃나라에서 거의 독점적 에너지공급자임에도 불구하고, 초과이윤을 얻기보다는 보조금을 제공해왔다.

2008년 금융위기를 예견한 몇 안 되는 분석가 중 하나인 누리엘 루비니는 러시아에 영향을 준 그 여파를 다음처럼 묘사한다.

최근 몇 년 사이 치솟은 석유와 가스 가격으로 인한 횡재로 가려진 러시아 경제와 상당히 많은 차입금을 지닌 은행과 회사들의 취약성이 세계 경제가 폭락하자 제 모습을 드러냈다. 게다가 낡아빠진 사회기초시설들을 떠안으면서, 러시아는 역기능적이고 실지 회복을 추구하는 정책과 인구학적으로 거의 회복불능인 상태로 추락하고 있다.”“Another BRIC in the Wall?,” 20091015

소련에서 물려받은 가공할 군사력으로 러시아는 국제정치에서 주연 노릇을 한다. 러시아는 또한 상당한 가치의 천연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몇몇 예외가 있지만, 러시아의 생산물은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이 없다. 그리고 부패한 졸부인 러시아 부르주아지에게선 선진적인 자본주의 경쟁자들과의 간극을 좁힐 수 있는 능력이 보이지 않는다. 러시아 국가에 대한 보고서에서 이코노미스트지는 다음과 같이 쓴다.

“INDEM에 따르면, 2005년 무렵 뇌물 시장은 3,000억 달러에 달한다. GDP20%에 달하는 수치이다. 코도르코프스키씨는 대부분의 뇌물은 교통경찰이나 의사에 지불되는 것이 아니라 관료들이 그들에 속한 회사에 제공하는 계약을 위한 것이다.’라고 말한다.
“1990년대 말 핵심 사업에 투자하기 시작한 개인사업자들과 달리, 관료-사업가들은 그렇게 해서 얻을 게 별로 없다. 그들의 부는, 새로이 등장한 소유권에서가 아니라, 그들의 정치권력에서 나온다. 이윤은 외국은행 계좌에 몰래 넣어두거나 유럽 수도의 사치품 또는 영국 사립학교 자녀 교육비로 빨리 써버린다. 서방에 반대한다는 수사나 러시아의 부활이라는 주장을 펼치며 이런 짓들을 벌이는 것이다.
사기업보다는 정부나 국영기업에 취직하기를 젊은이들이 바란다는 통계는 놀랄만한 일이 아니다. 지난 10년 동안 관료의 숫자는 527천에서 878천 명으로 66% 증가했다. 그리고 그와 같은 국가기구를 유지하기 위한 비용은 GDP 15%에서 GDP 20%가 되었다. 같은 기간에 러시아의 부패 정도와 소유권과 기업자유는 악화되었다.”이코노미스트, 2010129

러시아 경제는 세계시장으로 통합되었고 주로 천연자원에 의존하고 있다. 생산을 다양화하자는 러시아정부의 반복적 훈시에도 불구하고, 화석연료 수출이 러시아 경제의 중심이다. 대부분의 장비가 소비에트 시절 것인 사실에서 보이듯, 기술의 상대적 낙후로 말미암아 심지어 이 영역에서도 러시아회사들은 미국 프랑스 이탈리아 영국 또는 네덜란드 회사와 합작하여 새 매장지를 개발하고 있다. 러시아의 대기업인 루코일은 이라크 매장지 일부의 개발권을 따냈다. 그러나 더 선진적 기술을 지닌 미국 회사들에 하청을 주어야 했고, 그 하청업체들이 대부분의 이익을 챙긴다.

 

우크라이나와 혁명지도부의 위기

우크라이나의 요즘 정세는 매우 불안정하다. 자신들이 인민의 지지를 받지 못한다는 것 그리고 긴축정책들이 심각한 저항을 불러올 것이라는 것을 지배도당들은 잘 알고 있다. 역사적으로 노동계급 정당인 우크라이나공산당은 자본주의 공격에 맞선 수동적 태도와 비겁한 계급협조주의 역사로 인해 신용을 잃었다. 나머지 우크라이나 좌익들은 상대적으로 소규모이고 사회적 영향력이 작다. 그러나 새 정권이 앞으로 안길 심대한 재앙은 IMF와 키에프 하수인들에 대한 저항 능력이 있어 보이는 조직으로 하여금 대중적 지지를 얻게 할 것이다. 소위 개혁조치들이 고통을 가하기 시작하면, 전통적으로 보수적 계층마저도 저항에 참여할 가능성이 높다. 그리하여, 언어와 문화적 장벽을 가로질러 계급투쟁으로 결합할 가능성이 열릴 것이다.

우크라이나공산당의 왼쪽에 있는 가장 중요한 조직은, 대부분 우크라이나공산당에서 떨어져 나온 몇 개의 작은 조직들이 2012년 결성한, 유니온 보로트바(Union Borotba: ‘투쟁연대’)이다. 쿠데타 주도자들에 의해 지하로 숨어들기 이전, 보로트바는 극우 성장에 맞선 저항 조직, 부당 수취한 족벌자산의 재국유화 등을 주장하며 노동계급 내에 친사회주의 정서를 되살리려 했다.

2014년 말, 워커스월드Workers World[미국의 노동자세계당(WWP)이 운영하는 인터넷 사이트]는 보로트바 지도자 빅토르 샤피노프와의 긴 인터뷰를 5번으로 나누어 실었다. 그는 공산주의자나 좌익은 언론 거리 모든 곳에서 자유롭게 말할 수 없다. 비합법 정세이다.”라는 말로 쿠데타 이후의 우크라이나 좌익의 상황을 설명했다. 샤피노프는 프랑코 치하의 스페인 또는 1970~80년대 극우독재 치하의 남미 상황에 비유했다. 그는 우크라이나와 그리스 사이에 유사점이 있다고 지적한다.

이미 몇몇 유럽 나라들은 이 상황에 거의 근접해있다. 예를 들어 그리스에는 라이트섹터와 비슷한 황금새벽당이 있다. 그들은 군사적으로 무장하고 있다고 나는 확신한다. 정치투쟁이 더욱 심화되면, 무력투쟁 성격을 띠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이 상황에서 배워야 하고 어떤 정치세력이 성장하는지를 살펴야 한다.”

샤피노프는 우크라이나공산당의 절망적 무기력증이 보로트바 등장의 핵심 요인이었다고 설명한다.

우크라이나공산당에 대해 설명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 당시 지도부는 가장 강한 자본가 정당이면 무엇이든지 의회의 동맹으로 삼으려고 했다. 서방엔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 그러나 쫓겨난 대통령 야누코비치의 우크라이나지역당(Party of Regions)과 동맹을 맺기 이전에는, (2004오렌지혁명과 관계되고 지금은 키에프 군사정권의 일원인) 율리아 티모셴코 당의 협력자였다.
그것은 우크라이나공산당 지도부의 무원칙적 입장이었고, 우리로서는 단지 공산당 내 좌파로만 머물 수 없었던 이유이다. 게다가 공산당 내 좌파이던 동지들은 항상 쫓겨나야 했다. 매년 훌륭한 공산주의자는 축출되었다.”

샤피노프는 유럽 좌익들의 우경화를 적절히 묘사한다.

나는 유럽에 여러 번 다녀왔다. 세계 체제가 파괴되어 가라앉고 있을 때에도 유럽 좌익 상당수는 전진하지 않고 오히려 1970년대와 1980년대 누렸던 사회복지만 확보하려는 것을 관찰했다.
사람들은 좌익을 보수 세력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들의 기반이 점점 축소될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문제이다.”

그는 파시스트조직의 성장을 현상유지에 머무는 개량주의 좌익과 연관시켰다.

이 체제가 사멸하는 것을 알아차리고, 좌익들을 친체제적으로 묘사하면서, 자신들은 이 체제를 파괴할 전문가라고 내세우는 극우와 우익 포퓰리스트 조직들을 우리는 목도하고 있다. 예를 들어 프랑스에서, 그 동안 공산주의자에 투표하던 노동계급 일부가 이제는 국민전선에 투표한다.”

보로트바는 최소한 착취자들의 비위를 맞추기보다 투쟁해야 한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투쟁의지는 필요조건이기는 하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하지는 않다. 국제 노동운동 역사특히 볼셰비키 혁명의 핵심 교훈을 습득해야만, 족벌과 그 제국주의 후원자들을 물리칠 투쟁에 혁명적 지도력을 제공할 조직이 벼려질 수 있다.

보로트바의 공산당과의 분리는 제한적이며 경험적이다. 당장의 실천적 과제에 동의하고 스스로 혁명적이라고 주장하는 모든 세력들을 끌어안으려는 방식으로 역사의 핵심 강령 문제를 우회할 수 있다고 순진하게 생각한다.

우리는 과거에 공산주의 운동의 일부였다가 떨어져 나온 것이 지금 그렇게 중요하다고 보지 않는다. 또는 우리는 상당히 다른 관점으로 바라본다. 우리는 재건할 사람들(이 용어는 미국의 내전처럼 역사적 군사 투쟁을 재연할 사람을 지칭한다)이 있다는 것을 안다.
우리는 이렇게 되고자 하지 않는다. 우리는 노동계급과 피억압인민을 위한 진짜 정치를 수립할 것이고 스탈린이나 트로츠키 또는 마오쩌둥 등등처럼 되지 않을 것이다.”

레닌과 트로츠키의 정치는 카우츠키, 스탈린 그리고 마오의 정치에 맞서 있다. 처음이자 유일하게 정치적으로 각성한 노동계급이 권력을 잡고 성공적으로 유지했던 10월 혁명의 유산을 끌어안기 위해서는, 의회개량주의 정치[카우츠키], ‘진보적이라고 칭하는 자본가 분파와의 인민전선[스탈린] 그리고 농민에 기초한 게릴라 전략[마오]을 거부해야 한다.

1924년 레닌의 죽음 이후, 오직 트로츠키주의자들만이 일국사회주의에 맞서 초기 코민테른의 국제주의 전통을 고수했다. ‘일국사회주의, 멕시코에서 트로츠키를 암살하기까지 1930년대 내내 기괴한 숙청으로 레닌의 중앙위원회 회원 대부분을 제거한 스탈린을 수장으로 하는 기생적 관료집단이 주창한 협소한 러시아 민족주의 이론이다.

레닌주의 당은 무엇보다도 기회주의와의 노선 분립으로 규정된다. 이와 대조적으로 샤피노프와 그의 동지들은 다른 좌익들과의 명확한 정치적 구별을 회피함으로써 대중에게 더 쉽게 호소할 수 있다고 상상한다.

우리가 보로트바를 조직하기 시작할 때, 조직적 측면에서, 경쟁하는 좌익 조직들의 눈을 통해서가 아니라, 인민의 눈을 통해서 보이는 우리를 보려고 했다.
보통 사람들은 우리를 어떻게 보나? 다른 좌익들을 비판하는 데에 모든 시간을 소모하는 몇몇 선전물의 의견이 아니라, 그것이 우리 작업의 실천적 기준이다. 만약 당신이 그런 일에 많은 시간을 소모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사람들이 당신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그들에게 다가갈 수 있을지를 관찰하는 데에 더 많은 시간을 쓸 수 있다.”

이전 세대 투사들이 직면했었던 역사적 핵심 문제들을 외면하는 것은 곧 실패를 의미하는 것이다. 레닌의 당은 노동계급 안에 잘못된 사상을 실어 나르는 자들특히 혁명적 지도력을 제공한다고 주장하던에 맞선 끊임없는 정치투쟁과 실천적 대중사업의 결합을 통해서만 형성되었다. 레닌의 가장 중요한 정치적 기여는 광범위하고 모든 것을 포용하는 사회민주주의 형태의 당을 거부하고 오로지 가장 선진적인 노동자들로 구성된 규율 있는 전위당 노선을 제기했다는 점에 있다. 효율적인 전투 정당으로서 볼셰비키에 일관된 민주집중적 규율은 높은 수준의 정치의식과 명확한 강령적 동의에 기초한 것이었다. 이 관계는 전도될 수 없다. , 진정한 맑스주의 조직을 건설할 때, 조직규율이 정치의식에 선행할 수 없다.

만약 소비에트 노동자들이 정치혁명으로 떨쳐나서서 관료집단을 타도하지 않는다면 소련은 결국 자본주의로 되돌아가고 말 것이라는 트로츠키의 예견은, 불행하게도, 옳음이 입증되었다. 스탈린주의 경찰국가의 억압과 관료적 무능력의 결합은 소비에트 권역의 많은 노동인민으로 하여금 사회주의 계획 자체는 파산했다는 잘못된 결론에 이르게 하였다. 그러나 사회주의 이외에 그 어떤 것도 인종주의, 성차별, 기아, 환경파괴, 전쟁 등 인류가 안고 있는 근본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운송, 생산, 통신 등 생산수단의 사회화와 이윤이 아니라 인류의 필요에 의해 작동하는 이성적인 계획경제의 도입은 자본주의 야만을 끝내는 유일한 대안이다.

노동계급의 승리는 예정되어 있지 않다. 자본주의 착취와 그로 인한 병리증상 종식이라는 역사적 과업을 수행하기 위해, 노동계급의 선진분자는 일관된 혁명 강령을 손에 쥐어야 한다. 혁명 전투에 임하기 위해 계급적으로 각성한 새 세대 전사들이 거머쥐어야 할 정치적 필수 무기는 191710월 혁명의 그것이다. 노동계급의 정치적 재무장을 위해 헌신하는, 우리 국제볼셰비키그룹은 미래의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이끌 국제정당 건설이라는 목표를 가진 모든 이들과 함께 그 투쟁에 참여하려 한다.

19 February 2015
Ukraine, Russia & the Struggle for Eurasia

Tectonic Shifts in Global Politic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