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6대 대통령 선거에 대한

혁명적 맑스주의자들의 입장

      

민주노동당에게 표를 던지자!!
       개량주의 지도자들을 민주노동당에서 몰아내자!!

*역자주: 이 글은 번역자료이며 글의 오역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역자에게 있다.*.

12월 19일에 있을 제 16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나라는 미래에 대한 커다란 불안과 김대중 정권에 대한 광범위한 환멸의 분위기에 휩싸여 있다. 5년 전 김대중이 당시 여당 후보 이회창을 간신히 물리치고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때, 그는 다양한 정치 세력들의 지지를 받고 있었다. 재벌로 대표되는 부르주아 지배계급 주류의 일부는 그가 1997년 하반기에 터진 경제위기를 해결해 주기를 희망했다. 또한 이들은 그가 북한에 대한 개방정책을 통해 이 기형적 노동자국가와의 군사적 긴장을 대폭 완화하고 이윤을 위한 기업활동의 호조건을 조성해주기를 희망했다. 그리고 노동운동과 민중운동 내의 상당수도 그를 지지하면서 그가 전임자들과는 달리 민주적 권리를 보장하고 정치 자유와 노동조합의 권익을 허용할 것을 희망했다.
야당 지도자로는 최초로 대통령에 당선된 김대중은 민주적 절차에 의해 국민의 지지를 받아 역사적 정권교체를 이룩했다고 자랑했다. 그리고 대통령 취임사에서 “국민(단합)의 정부”의 개시를 선언하면서 진정한 민주주의, 경제발전, 깨끗하고 효율적인 정부 등을 위해 개혁을 이룩하겠다고 약속했다. 또한 북한과의 군사적 긴장을 대폭 완화하고 한반도에 영속적인 평화를 정착시켜 통일의 기초를 다지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그로부터 5년이 지난 지금 그의 정권은 역대 어떤 정권만큼이나 혐오의 대상이 되어 정치적 파산-무능-부정부패 정권임이 증명되었다. 보궐선거의 굴욕적 패배와 의원들의 탈당으로 그의 새천년민주당은 273석 국회에서 소수당으로 전락했다. 또한 올해 6월에 열린 지방자치단체 선거에서 야당인 한나라당에게 사상 유례없는 참패를 당했다.  이 결과 민주당의 공식 후보인 인권변호사 출신 노무현은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거의 없는 것처럼 보였다. 

 

<구름 낀 “햇빛 정책”>

“통일 대통령”이 되어 평화로운 번영 한국을 건설하려던 그의 장미빛 꿈은 미국 대통령 부시에 의해 산산이 깨졌다. 올해 1월 그는 연두교서를 발표하면서 북한을 “악의 축”의 일부라고 선언했다. 이 발언은 나라 전체를 충격 속에 몰아넣었다. 반도 전체를 폐허로 만들고 무려 4백만 이상의 사망자와 수백만의 부상자, 난민을 발생시킨 한국전쟁의 잿더미 속에서 다시 일어선 이 나라에 또 다시 전쟁과 파괴의 위협이 임박한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심지어 김대중 조차 2월 5일 이렇게 경고했다: “한반도에 다시 전쟁이 일어난다면 끔찍한 파괴가 다시 자행될 것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한편 미국과 맺은 1994년 제네바 합의를 무시하고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해왔다는 10월 17일의 언론 보도는 부시의 발언으로 야기된 불안을 증폭시켰을 뿐이었다. 미군이 남한의 기지 여러 곳에 전략 및 전술 핵무기를 배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곧 핵전쟁이 터질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엄습했다. 현재 미국은 전세계에서 7개국을 지목하여 긴급 핵공격 계획을 수립해 놓고 있다. 북한은 이 7개국 가운데 하나이다. 만약 미국이 트집을 잡아 북한을 핵무기로 공격한다면 북한 미사일은 휴전선을 넘어 약 2천4백만이 살고 있는 서울 수도권을 불바다로 만들지도 모른다.
지금 분위기는 2000년 2월 김대중이 평양을 방문하여 최초의 남북 정상회담을 개최한 때와는 전혀 다르다. 당시에는 5십년간 지속된 남북의 군사적 긴장이 이제 일련의 화해 조치로 완화될 것이며 결국에는 통일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낙관적 분위기가 지배했었다. 제국주의 언론은 김대중의 화해 정책에 온갖 찬사를 보냈으며 결국 그는 노벨 평화상 수상자가 되었다. 자국 기업들의 이윤추구 기회와 동아시아 지역의 영향력 확보를 위해 유럽연합 제국주의자들이 북한과 외교관계를 수립하자 미국 클린튼 행정부도 뒤질세라 국무장관 올브라이트를 평양으로 보내 한국전쟁 이후 최초의 북미 고위급 회담을 성사시켰다. 김대중의 “햇빛” 개방정책은 밝게 빛나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한반도의 군사적 외교적 상황이 전반적으로 개선될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햇빛 정책”이 실현될 경우 남한에 주둔한 3만7천명의 미군이 존재 이유를 상실하게 될 것이었다. 또한 북한은 이 정책으로 인해 경제적 이득을 보면서 동시에 남한, 러시아, 일본, 중국, 유럽연합국 등과 가까운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이 상황에서 2001년 1월 부시가 미국 대통령에 취임하여 미국 부르주아 계급의 정책 변화가 예상되었고 남북의 화해-협력 무드가 거부될 조짐이 보였다. 미국 공화당 우익은 제국주의 경쟁국들에 대한 우위를 확보하고 미국의 군사적 세계 지배를 강화하면서 중국의 기형적 노동자국가를 고립시키기 위한 노력에 박차를 가했다.
이제 한반도에 필요한 것은 “햇빛 정책”이 아니라 북한을 굴복시킬 정책이었다. 이것은 북한을 고립시켜 기아와 경제붕괴를 통해 북한 체제를 전복하는 것을 의미했다.

올해 6월 29일에 있었던 남북 해군 간의 서해교전은 남측에 5명의 사망자와 다수의 부상자 그리고 북측에 파악되지 않은 다수의 사상자를 낳는 유혈극이었다. 부시 행정부는 이 사건을 핑계 삼아 북한의 외교적 경제적 고립을 획책했다. 예정되었던 북미 외교 회담은 미국에 의해 일방적으로 취소되었다.

제 2차 세계대전의 종결과 함께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서 벗어난 이래 남한은 실질적으로 미국의 보호국이 되어왔다. 남한의 역대 정권들은 미국의 대외정책을 그저 앵무새처럼 반복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김대중은 북한에 대한 미국의 비난을 되풀이하면서 경제적으로 곤경에 처한 북한에 대해 원조를 끊겠다고 위협했다.

 

<찌그러진 개혁>

그러나 대외정책에서 찌그러진 김대중 정권은 국내 정책에서도 행운이 없었다. 일련의 개혁 정책들은 처참한 실패로 끝나 김대중 정권이 역대 어떤 정권보다 더 많은 자유를 보장하고 능력을 발휘할 것이며 “진보적”일 것이라고 떠벌렸던 소위 “진보” 학계와 정치 세력들을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김대중 정권에 대한 사이비 진보 세력들의 짝사랑을 가장 극명하게 드러낸 사건은 의료 개혁과 관련되어 일어났다. 남한의 병원들은 처방약 판매와 제약회사에서 나오는 뇌물로 재미를 보고 있었다. “의약분업”이라는 미명 하에 실시된 의료 개혁은 병원이 처방약을 조제-판매하는 것을 금지했고 당연히 이에 따른 뇌물도 받을 수 없게 만들었다.  이제 의사와 병원 소유주들이 누렸던 이익은 약국으로 넘어갔다. 당연히 이로 인해 의사들과 병원 소유주들은 금전적 손해를 입었다.

2000년 6월 이에 항의하여 의사들이 전국 총파업을 벌였다. 이 파업은 이후 4차례나 더 벌어졌다. 의사들에 의한 사상 초유의 집단행동은 의료 서비스의 일시적 중단, 환자들의 사망, 파업 의사들의 체포를 야기시켰다. 정부는 의료개혁이 일반인의 의료비 부담, 정부의 의료 재정, 약의 오남용을 크게 줄일 것이라고 강변했다. 이 모든 폐단은 이윤이 눈이 먼 의사들이 처방약을 지나치게 많이 환자들에게 제공했기 때문에 일어났다는 것이다. 그러나 결국 정부는 의사의 집단행동에 굴복해 의료수가를 70%나 인상시켜주었다. 이 결과 의료사회연구소 의 연구에 의하면 의료개혁 실시 후 매년 약 5조원의 의료 기금의 손실이 초래되었으며 의료보험 가입자들은 약 2조 5천억을 더 부담하게 되었다. 내년만 해도 이미 오른 의료보험료가 9% 더 인상될 예정이다.  “진보적” 학자들과 정치 집단들은 정부의 정책을 입안했고 이후 옹호했으나 세가지 중요한 사실을 고려하지 않았다. 첫째, 남한의 병원들은 대부분 개인 소유로 “돈을 벌지 못하면 망한다”는 자본주의의 가차없는 논리에 매여 있다. 둘째, 의사들은 훈련과정에서 공공부문이나 정부의 지원을 조금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자신들이 힘들게 얻은 사회적 경제적 지위를 위협하는 어떤 시도에 대해서도 저항할 수 밖에 없다. 셋째, 수년간 정부는 법에 의해 의료 재정에 투입할 자금을 투입하지 않아서 의료 기금의 파산을 불러올 수 있었다. “진보적” 의사들과 의료 전문인들은 의료개혁으로 남한의 의료체계가 서구의 복지국가에서와 같은 좀더 효율적이고 인간적인 의료 체계를 가져올 것이라고 허황되게 희망해왔다. 그러나 결국 일반 서민의 의료부담만 가중시킨 의료 개혁은 정부 정책 일반의 신뢰성에 치명적 손상을 가했다.    

 

<거부당한 개혁>

김대중 정권의 취임 때부터 피억압 계층은 그의 무능 “개혁 정책”에 대해 대대적인 항의 투쟁에 나섰다. 2000년 10월 25일 5만명의 농민들은 전국의 주요 고속도로를 점거하여 정부가 오도한 정책으로 농민이 입은 부채를 탕감할 것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또한 농산물에 대한 적정한 가격을 보장할 것을 요구했다. 우르구아이 무역 협상 이후 남한 정부는 농민들에게 쌀을 비롯한 주곡 생산에서 좀더 채산성이 있는 작물로 전환할 것을 촉구하고 이에 대해 저리 융자를 제공해왔다. 그러나 정부가 권고한 작물이 공급 과잉을 일으키고 대규모 국제 농업자본에 대한 전면적 농산물 시장 개방이 이루어지면서 다수의 농민들은 파산에 직면하였다.

올해 11월 13일 서울에서는 전국에서 모인 15만 농민들이 시위를 벌여 농민의 경제를 파탄시킨 정부의 “개혁” 농정에 항의했다. 1999년에 발표된 정부 통계에 의하면 전체 농가의 40%는 수지를 맞출 수 없으며 50%는 부채를 지불한 능력을 상실했다. 올해 들어 정부는 쌀농사에 대한 보조금을 세계무역기구(WTO)의 규정에 의해 폐지하겠다고 발표했다. 농민들은 이것을 국내 농업의 포기로 간주하고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저항하였다.  

좌익과 노동운동 내부의 김대중 “비판적 지지” 세력의 오랜 소망에도 불구하고 규제 해제, 노동 유연화, 국영기업의 민영화, 노동운동에 대한 강화된 탄압 등의 노동 “개혁” 정책은 정권에 대한 노동자들의 저항만을 불러 일으켰다. 올해 9월 11일 경찰은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하며 112일 동안 파업을 벌여온 경희의료원과 강남 성모병원 조합원들에 대한 침탈을 자행했다. 이로 인해 500여 조합원들과 지원 대학생들이 체포되었다. 김대중이 노동자들의 권익을 옹호한다는 지지자들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그의 임기 동안 체포-수감된 노동자의 수는 김영삼 정권의 경우보다 더 많았다. 민주노총의 통계에 의하면 지난 5년간 구속 수감된 노동자들의 수는 800명을 넘어섰다

 

<홍삼과 너무 많은 “게이트”>

김대중의 임기 내내 부정부패 사건은 끊이질 않았다. 올해 11월 11일 김대중의 삼남이자 막내아들인 김홍걸이 뇌물수수와 청탁 혐의로 실형 2년과 벌금형에 처해졌으나 집행유예 3년으로 풀려났다. 그는 청탁의 대가로 모 기업인에게 35억원을 받은 혐의로 지난 7월 기소되었다. 그의 범죄에 대한 선고가 있기 바로 10일 전에 김대중의 차남 김홍업은 48억의 뇌물 수수와 세금 포탈 혐의로 3년 6개월의 징역형과 16억의 벌금형에 처해졌다.

그러나 가장 유명한 게이트 가운데 하나는 2000년 10월 27일에 터졌다. 벤처기업 코리아디지털라인의 회장 정현준은 금융감독위원장 장내찬에게 뇌물을 바친 혐의로 체포 기소되었다. 뇌물에 대한 대가로 장내찬은 637억에 달하는 정현준의 불법대출을 묵인해 주었다. 주식 투자를 하다가 거액의 손실을 본 정현준은 자신이 대주주로 있던 3개 종금회사와 투자회사로부터 거액을 대출받았다. 이 불법대출금으로 그는 망해가던 자신의 기업을 살리려 했다. 검찰은 정현준이 정치적 연줄들을 이용하여 금융감독위원회의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고 발표했다. 이 금융 스캔들은 새천년민주당의 실세 4명과 연결되어 있었다. 이 중의 하나는 김대중의 장남 김홍일이었으며 또 하나는 그의 오른팔인 김옥두였다. 깨끗하고 효율적인 정부를 운영하겠다던 그의 선거 공약에도 불구하고 김대중은 임기 내내 제 3 세계 기업계와 정치계에 고질적인 족벌주의, 정실주의, 노골적인 사기행각 등의 중심에 있었다.

 

<“공산주의”의 붕괴와 낙원에서 쫓겨난 재벌>

그러나 김대중의 정치적 대실패는 주로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객관적 요인들 궁극적으로는  소련을 위시한 반(anti)자본주의 세력에 대한 제국주의 세력의 승리에 기인하고 있다. 1990년대에 들어서서 남한은 아주 소중한 자산 즉 공산주의의 위협에 대한 보루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받은 제국주의 국가들로부터의 특혜를 상실했다( “Korea: Workers Resurgent”, 1917 No.15, 1995 를 참조하시오). 구소련과 동구 위성국들이 붕괴하면서 “공산주의”의 위협은 사라졌으며 경제적으로 안정된 남한을 유지해야 할 제국주의 세력의 전략적 필요성 역시 사라졌다. 이제 제국주의 자본가들은 남한 정부가 세계시장에서 자신들의 강력한 경쟁자인 재벌들을 직접 지원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이들은 남한 정부에게 재벌에 대한 “불공정” 지원을 그만두도록 경제적 정치적 압박을 가했다.

미국은 일본의 경우보다 훨씬 가혹한 무역공세를 남한정부에 가했다. 물론 남한 정부는 이에 대항할 힘이 전혀 없었다. 미국 정부는 남한의 제조업체들에게 덤핑 판정을 내렸으며 이들이 섬유, 의류, 강철 등 여러 품들에 대해 “자발적인 수출 억제 정책”을 취할 것을 강요했다. 마지막으로 제 3 세계 토착 기업들을 돕기 위해 이들의 제품에 대한 특혜 관세를 적용하는 무역 특혜국 대상에서 남한을 제외시켜버렸다. 사면초가에 처한 남한은 무역수지가 극도로 악화되었다. 1987년에는 대미무역흑자가 96억 달러였으나 1992년에는 대미무역수지가 적자로 돌변하여 무려 1억5천9백만 달러가 되었다. 1996년에는 대미무역적자가 100억 달러에 이르러 전체 무역수지는 210억 달러의 적자를 기록했다. 당연히 이 상황은 1997년 말 금융위기와 뒤이은 국제통화기금의 580억 달러 구제금융의 한 요인이 되었다. 이제 남한이 아시아의 4마리 용 가운데 하나라는 말은 사라졌다.

구제금융을 받는 모든 나라에게 그렇듯이 국제통화기금은 김대중 정부에게 공공부문의 적자를 대폭 줄이고 공익성 사업들을 삭감할 것을 요구했다. 이 결과 이미 피폐한 근로인민 대중의 삶은 더욱 악화되었다. 인구 과밀과 천연자원 부족에 허덕여온 남한은 한국전쟁으로 그나마 남아 있던 산업생산수단이 완전히 파괴되었다. 따라서 반공의 보루로 안정된 체제를 유지하는데 필요한 경제개발을 위해서는 외국 자본의 대대적 수혈과 국가의 직접적 경제개입이 필수적이었다. 대규모 외국 자본으로 구축된 전기, 가스, 용수, 철도, 도로 등 사회기반 시설을 유지-관리하고 자본주의 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 국가는 모든 활동을 지휘했다. 관료적 개발독재의 막대한 초기 비용은 정부 산하 국영기업의 적자로 기록되었다. 이것은 남한이 공산주의에 대한 보루였을 때에는 제국주의에 의해 권장되었으나 이제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제국주의 첨병인 국제통화기금의 으름장으로 정부는 대대적인 민영화 정책을 실시했다. 1997년 말 금융위기와 경제위기의 상황에서 민영화 정책의 덕을 보는 쪽은 당연히 외국 자본가들이었다. 이들은 민영화 정책으로 헐값으로 나온 기업들의 자산들을 모조리 인수했다. 민족주의 정치 세력들은 김대중 정권의 민영화 정책을 비난했다. 그러나 이들의 구호인 “외국 자본에 대한 매각 반대”는 민영화에 대한 노동계급의 저항을 남한 부르주아 계급의 이익에 종속시키는 반동적 헛소리에 불과하다. 민영화에 저항하는 노동자들은 투쟁력을 고용안정과 노동조건 개선에 집중하여 이후 계속 투쟁할 수 있는 힘을 비축해야 한다. 그리고 이 힘으로 신자유주의 공세를 받아 치면서 민영화를 저지해야한다. 노동대중의 지속적 이익은 외국 자본이건 국내 자본이건 자본에 대항할 때만 확보될 수 있다. 또한 노동계급의 계급지배 하에 생산수단을 사회화하는 것을 통해서만 이 이익은 확고히 옹호될 수 있다.

새로운 상황 하에서 재벌 역시 국가 소유 은행의 무이자 자금지원, 보호된 내수시장, 세계시장에 대한 무제한 적인 접근 등 기존의 혜택을 박탈당했다. 남한의 제 2의 재벌 대우는 1999년 10월 570억 달러의 빚을 감당하지 못해 무너졌다. 1967년 소규모 섬유업체로 시작한 대우는 망할 당시에는 국내에 33개의 자회사, 해외에는 372개의 자회사를 거느려 전체 고용인원이 32만에 달하는 거대 기업집단이었다. 대우의 운명은 남한 재벌들의 좋은 날들이 지나갔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으며 냉전 시대에 친미 제 3세계 국가들이 보여주었던 국가와 기업의 유착도 과거 지사임을 증명하였다.

이제 외국자본은 남한경제에 대대적으로 유입되어 경제 지배력을 더욱 증대시키고 있다. 대기업들의 덩치 큰 자산들과 은행 자본의 70%는 현재 외국 자본의 손에 들어가 있다. 삼성자동차는 르노의 수중에 대우자동차는 제너럴모터스의 수중에 들어가 있다.

이러한 객관적 조건 속에서 김대중은 이렇다 할 운신의 폭을 확보하지 못한 채 “개혁”이라는 미명하에 대중을 공격하는 정책을 하나씩 밀어붙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이제 자신의 출신지인 전라도에서조차 지지를 상실했다.

사실 남한 경제의 미래는 암담하다. 농산물은 세계시장에게 가격우위를 이미 내주었고 노동집약산업 품목들은 중국과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저가 경쟁에 밀리고 있다. 또한 기존의 국가지원을 받지 못하는 재벌들은 미국과 서구 기업들에게 기반을 침식당하고 있다. 세계경제의 전반적인 경기침체와 이로 인한 남한의 수출 부진이 지금의 일반적 경제 현실이다.

1997년말 금융위기의 대단히 어려운 상황에서 살아 남기 위해 기업들이 단행한 소위 구조조정으로 실업대란이 현실화되었으며 이로 인해 사회 구석 구석에는 위기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매년 배출되는 45만의 대학교 졸업자들에게 사회는 실업자 신세를 강요하고 있다. 어느 한 조사에 의하면 직장을 구하는 67명의 새로운 구직자들 가운데 오직 1명만이 이번 입사 시즌에 직장을 구할 수 있다.

 

<그놈이 그놈이다>

현재 대선 레이스를 벌이고 있는 부르주아 정당의 모든 후보들은 이구동성으로 외친다: 사회의 병폐는 김대중 정권 때문이며 이것을 치유할 수 있는 자는 나뿐이다. 그러나 이들 중 어느 누구도 현 정부와 근본적으로 다른 강령을 제시할 수 없다. 대중들이 부르주아 정치에 무관심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올해 6월 지방자치단체의 투표율이 49% 에 불과했으며 13개 지역구가 걸린 8월 8일의 국회의원 보궐선거의 투표율은  27%에 불과했음이 이를 말해주고 있다. 물론 대통령 선거는 5년에 한번 열리며 대통령직이 남한의 부르주아 정치과정의 중심에 있으므로 이번 선거의 참여율은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부르주아 정당의 어느 후보도 대중의 관심을 크게 끌지 못하고 있다.  

현재 야당인 한나라당의 이회창 후보가 당선될 확률이 가장 많은 것으로 보인다. 그는 기업계, 군부, 중산층의 우파를 대변하고 있다. 그는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군부독재 시절 권력의 하수인인 대법관이었으며 김영삼 정권에서는 총리로 있었다. 따라서 일반 서민의 눈에 그는 “개혁정치”의 기수라기보다는 낡아빠진 정치꾼에 불과하다. 그가 공언하고 있는 친미, 친자본, 반노동계급적 정책은 이후 위기를 심화시키고 대중의 분노를 더욱 부채질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여당인 새천년민주당의 노무현 후보는 김대중 정권을 비판하면서 자신이 “새로운 세대”의 정치지도자임을 자처한다. 부르주아 계급의 자유주의 좌파를 대표하는 그는 노동운동과 민중운동 일부의 지지를 받고있다. 그러나 그의 선거강령은 5년 전 김대중의 것과 거의 차이가 없다. 그리고 근본적으로 이회창의 강령과도 별 차이가 없다. 새천년민주당에 대한 대중의 지지도가 급낙하자 그는 표를 얻기 위해 현 정권을 비판했다. 이 결과 당내에서 반쪽짜리 지지를 얻은 그는 선거를 승리로 이끌 가능성이 적다는 이유로 도전을 받아왔다. 그에 대해 비판적인 당내 세력 일부는 민주당을 탈당하여 한나라당이나 정몽준의 국민통합21에 합류했다. 결국 막바지에 후자와 통합이 성사되기는 했으나 이 술수가 소위 “국민이 뽑은 단일 후보”라고 자처하는 노무현의 지지도를 상승시킬지는 의심스럽다.

한편 과거 민주노조 지도자들이 모여 결성한 노동연대는 자유 부르주아 계급의 대표인 노무현에 대한 지지를 촉구하면서 노동계급을 오도하고 있다. 그러나 정몽준과 손을 잡은 노무현을 계속 지지하는 것이 옳은지는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정몽준의 아버지 정주영은 구사대를 동원하여 현대 노동조합 활동가들을 죽이고 병신으로 만드는 등 노동자에 대한 착취와 탄압의 대명사였다. 노무현/정몽준에 대한 지지는 노동계급의 정치적 독자성을 훼손시키는 배신행위일 뿐 아니라 노동운동을 탄압한 자와 연관이 있는 후보를 지지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노무현에 대한 지지는 노동계급에게 아무런 이익도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노동계급을 사칭하는 자>

물론 노동계급 일반을 대표한다고 주장하는 후보들도 있다. 권영길은 남한 노동조합운동의 전투적 부위의 관료화된 정치적 표현인 민주노동당의 후보이다. 개량주의 지도부에 의해 장악된 민주노동당은 노동계급의 전투적 부위와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주관적 혁명 분자들의 정치투쟁 무대이다.

6월 지방자치단체 선거에서 민주노동당은 정당명부제로 인해 8%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이에 고무된 권영길은 자신이 보수 부르주아 정치 행태를 일소할 “진보” 정치의 진정한 대변자라고 주장한다. 지난 10월 7일 선거운동본부를 구성하면서 민주노동당은 선거강령을 제시했다. 이 강령은 1920년대에 레닌이 비판적 지지를 보낸 사민주의 강령의 전형이다. 물론 집권할 경우 권영길은 이 강령마저 배신할 것이다. 이 강령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정치부패의 근절, 지역-성-계급에 기초한 모든 차별의 폐지, 부유세와 군비 축소로 국민복지기금 조성, 국가에 의한 주택-교육-의료 서비스 제공, 남한-북한-미국-일본이 참여하는 평화조약 체결,  한반도의 평화통일.

그러나 통일은 그 자체만으로는 노동계급에게 선이 될 수 없다. 북한의 집단적 소유를 파괴하는 자본주의적 통일은 국제 노동계급의 패배가 될 것이다. 남한 노동자들은 지금보다 더욱 높은 실업률과 훨씬 낮은 임금에 시달릴 것이다. 동시에 노동계급은 북한의 자본주의적 재건에 드는 비용을 고스란히 부담해야 할 것이다(“The collapse of the DDR”, 1917, No.8, 1990 을 참조하시오). 따라서 북한의 기형적 노동자국가를 집어 삼키려는 내외 자본가들의 기도에 대해 남한 노동자들은 북한의 집단적 소유체제를 방어해야 할 것이다. 한반도 전역에 사회주의 혁명이 승리한 가운데 성취되는 통일만이 노동자와 피착취 인민의 이익에 부합할 것이다. 북한 노동자들은 김정일 관료집단을 타도하여 정치혁명을 완수하고 남한 노동자들은 자본주의를 타도하는 사회혁명을 성취해야 한다. 이 결과 탄생할 사회주의 통일 한국은 중국과 일본의 노동계급을 고무시켜 동아시아 사회주의 연방의 초석이 될 것이다. 이것만이 이 지역의 평화와 번영을 보장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민주노동당 강령 가운데 그 자체로 지지할 수 있는 내용들도 있다. 그러나 이것들은 자본주의와 미제국주의 질서 속에서는 실현될 수 없다. 남한의 정치와 경제를 지배하고 있는 내외 독점자본의 생산수단이 몰수되지 않으면 기업과 정치인들의 은밀한 거래는 계속될 것이다. 또한 신자유주의가 전세계 노동계급을 공격하는 현실에서 과거 복지국가와 연상되는 사회복지는 남한과 같은 나라의 경우 사회의 생산수단이 노동계급의 손에 장악되어 대다수 근로인민의 이익을 위해 활용되지 않으면 제공될 수 없다.

그러나 권영길의 철저한 개량주의 강령은 그의 고안물이 아니라 남한노동운동을 오염시켜온 개량주의자들의 집단적 소산이다. 남한의 개량주의는 한국전쟁의 폐허 위에서 진행된 1956년 대통령 선거와 진보당 당수 조봉암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생산수단의 완전히 파괴로 야기된 격심한 사회위기 속에 진행된 선거에서 조봉암은 대중의 지지를 통해 2백2십만 표를 얻어 미국 괴뢰정권의 대표 이승만에 이어 2위를 기록했다. 그러나 선거가 끝난 후 2년도 채 지나지 않아 남한 사민주의의 시조 조봉암은 북한의 간첩 혐의로 기소되어 군사법정에서 사형을 언도 받고 처형되었다.     

그러나 반공 히스테리와 노동계급의 정치적 표현에 대한 극심한 국가 탄압이 판치는 남한에서 사민주의자들은  최근에도 자신들의 정치 목표를 실현하려고 분투해왔다. 이것은 이들이 역사로부터 배울 능력이 없음을 입증한다. 서구의 사민주의자들은 자본주의의 진보적 단계에서 구축된 강력한 노동조합 관료층에 기초하여 정치적 영향력과 물질적 안위를 누렸다. 서구의 동료들이 누려왔던 영광(?)을 실현하려는 헛된 희망을 안고 남한의 사민주의자들은 다시 결집하여 1990년 민중당을 창당했다. 그리고 소련의 붕괴로 지하활동을 청산하고 공개적 대중 정치활동으로 노선을 전환한 3개 스탈린주의 그룹의 결성체인 한국노동당 창준위와 연합하여 1992년 4월 국회의원 선거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1987년 노동자 대투쟁으로 탄생한 전투적 노동자 대중운동을 대표하겠다고 선언한 이들은1%의 득표율을 기록하고 단 하나의 의석도 얻지 못하는 수모를 당한 후 정당법에 의거하여 간단히 해체되었다.  이 정당의 지도자들은 현재 부르주아 야당인 한나라당의 국회의원으로 있으면서 지배계급 우파의 나팔수 역할을 하고 있다.  이들은 자신들의 정치 선배인 조봉암을 죽인 악랄한 국가보안법을 철폐하려는 노동운동의 오랜 투쟁을 앞장서서 반대하고 있다.          

민주노동당의 대통령 후보 권영길은 남한 사민주의의 처연한 역사의 최신 산물에 지나지 않는다. 국영 서울신문의 파리 특파원 출신인 그는 1989년 언론노련의 위원장을 지낸 후 민주노조운동의 지도자가 되었다. 1995년 출범한 민주노총은 그를 초대 위원장으로 추대하며 전투적 노동운동의 계승자를 자처했다. 그러나 이미 이때 노동자 대투쟁의 제 1 세대 지도자들은 노동조합 운동의 전투성을 제한하면서 부르주아 질서에 영합하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었다. 민주노총 지도부는 “국민과 함께 하는 노동운동”을 구호로 내세우며 자신들을 “책임성과 존엄성”을 갖춘 사회의 주체로 포장하였다. 이들의 당면 목표는 민주노총의 합법화와 자신들의 안정적 지위 확보였다.  이들은 신자유주의의 공격 앞에 살아 남기 위해 필요한 비타협적 전투성보다 협상과 타협을 선호했다.

1996년말 김대중의 전임자 김영삼이 정리해고와 노동유연화를 내용으로 한 일련의 법안들을 국회에서 날치기로 통과시키자 민주노총 지도부는 한국전쟁 이후 최초의 전국 총파업을 선언했다(.“South Korea to the Brink”, 1917, No.19, 1997 을 참조하시오). 그러나 권영길 일당은 총파업 투쟁이 중용과 “책임성” 하에 진행되도록 만전을 기했다. 남한의 전투적 노동조합 투쟁의 전형적인 형태인 공장점거 투쟁 대신 민주노총 지도부는 항의성 평화시위를 조종하고 공공부문 노동조합의 파업을 막았다. 이 결과 이 투쟁은 정부로부터 단 하나의 양보조치도 따내지 못한 채 현장 투사들의 대량 해고를 자초했을 뿐이었다. 이 결과 대공장 현장은 사측에 의해 장악되었다. 이때 이후 평조합원들이 전투적 지도부를 세우는 경우에도 대다수 대의원들이 사측에 매수되어 노동조합의 정상적인 활동이 거의 불가능한 경우까지 발생했다.

민주노총 지도부와 대공장 노조 지도자들의 비겁함은 올해 발전노조의 파업투쟁에서 극명히 드러났다.  5천여 발전노조원들은 2월 25일 국영 한국전력이 소유한 5개 화력발전소의 민영화에 반대하며 파업에 돌입했다. 38일의 파업투쟁 과정에서 정부는 발전소에 경찰력을 투입하여 파업 조합원들의 체포를 기도했다. 조합원들은 작업장에서 빠져나가 휴대폰으로 연락을 취하며 특정 장소에서 계속 파업투쟁을 전개했다. 정부는 대대적 해고를 단행하겠다는 엄포를 놓았으나 파업 조합원들은 정부가 항복할 때까지 계속 투쟁하겠다는 결의를 보였다.

그러나 4월 2일 노조 지도부는 민주노총이 주선한 정부와의 협상안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파업 노조원들의 현장 복귀를 명령했다. 동시에 민주노총은 12만 조합원이 참여할 예정인 동조파업을 시작되기 직전 취소시켰다. 발전노조 위원장 이호동은 이 투쟁이 “국영기업의 민영화를 저지하는 데에는 실패했음을” 인정하였으나 파업 노동자들이 “기간 산업을 민영화로부터 보호할 중요성을 일반인에게 인식시키는데” 성공했다고 자평했다.    

그러나 정부와의 합의 내용은 완전한 투항 그 자체였다. 이것은 노동계급에게 심각한 타격이었다. 이 합의를 통해 한전 발전소들의 민영화는 기정사실이 되었으며 정부는 파업 노동자들을 마음대로 징계할 수 있게 되었다. 합의 내용에 따르면 노조는 “민영화는 단체협상의 사안이 될 수 없다”는 3월 8일자 중앙노동위원회의 판결을 인정했으며 노동시간의 단축 요구 등을 포함한 다른 사안들을 중앙노동위원회의 중재로 넘겼다.

정부는 기간 산업의 단체행동을 금지하는 법에 따라 발전노조의 파업을 불법이라고 이미 선언한 바 있었다. 이에 따라 한전에 약 250억원의 손해 배상을 노조에게 강요하는 소송을 준비했다. 이에 대해 노조의 협상 대표들은 정부가 파업 노조원들에 대해 형사처벌을 “최소화” 해줄 것을 요청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이미 340명의 파업 노조원이 해고된 상태에서 “민사 및 형사 상 책임을 공정히” 하고 “적정한” 수준에서 노조원들을 징계하겠다는 발표와 함께 한전 경영진은 600명을 파업과 관련된 책임을 물어 해고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제 모든 문제가 정리되자 노조 지도자들은 정부와 함께 공동성명서를 발표하였다. “장기화된 파업에 대한 국민의 용서”를 구하고 “노사정이 함께 노력하여 앞으로는 법과 원칙을 준수하여 이런 파업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한다”는 것이었다.

자본주의가 진보적 단계에 있었을 때에는 노동조합운동과 이에 기반한 사민주의 운동이 굳건히 토대를 구축할 수 있었다. 봉건적 생산관계의 장벽을 허물고 생산력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시대였기 때문이다. 체계적 개량을 목표로 하는 운동은 인정될 수 있었으며 이에 따라 노동조합도 꾸준히 자신의 영역을 개척할 수 있었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반동적 단계에 들어선 제국주의 시대에는 특히 남한과 같은 나라에서 대중적 노동조합 운동은 사회주의 혁명이 성취되기 전에는 안정적 기반을 누릴 수 없다.

이런 점에서 민주노총 지도부가 신자유주의의 공세 앞에서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충분히 예견될 수 있었다. 문제는 권영길이 이 어려운 노동조합운동을 기반으로 부르주아 정치세계에 자신의 무대를 마련하고 제국주의 부르주아 계급의 하수인 역할을 하는 사회주의 인터내셔널(SI)에서 블레어, 슈뢰더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려는 망상을 품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약 2만명의 민주노동당 당원 가운데 약 50%는 민주노총에 소속되어 있다. 따라서 민주노동당을 민주노총당으로 부르기도 한다. 민주노동당은 될 수 있으면 가까운 시일 내에 60만 민주노총 조합원 전부를 당원으로 가입시키기를 원하고 있다. 이를 통해 극악한 반공주의로 오염된 남한에 서구 사민주의를 모사하려고 한다. 그러나 현재 민주노총 소속 노동조합들은 신자유주의 공세로 하나씩 무너지고 있다. 민주노총의 통계에 의하면 1천4백만 임금직 가운데 54%가 비정규직이다. 민주노총의 60만 조합원과 한국노총의 95만 조합원 통계를 그대로 인정하더라도 노조조직율은 12%를 밑돌고 있다. 따라서 제국주의 경제질서에서 남한의 지위를 반영하듯 민주노총 관료들은 아주 취약한 토대를 가지고 있을 뿐이다. 제국주의 국가들의 노동조합 관료들이 거대한 노동조합 조직을 휘두르고 대기업 중역에 버금가는 연봉을 누리는 것과는 달리 민주노총의 일반 관료들은 평균임금을 약간 웃도는 수준에서 겨우 생활을 유지하고 있으며 국가의 탄압에 항상 노출되어 있다. 현재 민주노총 위원장 단병호는 파업투쟁과 관련된 실정법 위반으로 감옥에 갇혀있다.

이런 열악한 남한의 조건 속에서 노동조합 관료에서 부르주아 정치인으로 성공하는 것은 상당한 매력이 있다. 권영길은 자신의 출세 가능성을 늘리기 위해 끊임없이 “진보적” 학자, 변호사, 전문가 집단의 지지를 구해왔다. 또한 부르주아 정당의 “진보적이고 개혁 성향의” 인사들과 언제든지 연대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공언해왔다. 민주노동당의 노동자 주도성이라는 허세도 이미 버린 지 오래되었다. 물론 “진보적이고 개혁 성향의” 부르주아 정치인들은 아직 그의 제안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지만 권영길은 언제든지 노동계급의 이해를 희생시키고 소부르주아 또는 부르주아 계급의 “진보적” 이해를 추구할 준비가 되어 있다.

물론 권영길의 인민전선 성향 역시 그의 고안물이 아니다. 남한의 사민주의는 자신의 정치적 진출을 가로막는 막강한 장애물들을 우회하기 위해 애초부터 소부르주아 및 “자유” 부르주아 세력과 “진보적” 연대를 갈구해왔다.

노동계급 정당과 부르주아 정치세력 사이의 정치 연대인 인민전선은 지난 세기 내내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노동자의 저항을 약화시키기 위해 전세계의 사이비 노동운동 세력들에 의해 애용되어져 왔다. 혁명적 상황의 인민전선은 부르주아 질서를 구출하면서 한 세대를 걸쳐 노동운동의 완전한 괴멸을 초래했다. 비혁명적 상황의 인민전선은 노동계급의 일반적인 사기저하를 초래했다. 남한에서 인민전선은 노동운동의 상당한 부위가 자유 부르주아 정치세력을 지지하는 형태를 띠어왔다. 예를 들어 군부독재의 정치질서 지배 이후 17년 만에 처음으로 직접 선거가 실시된 1987년 대통령 선거에서 노동자 민중 운동의 인민전선주의자들은 김대중이나 김영삼을 지지했다. 이들의 압력으로 노동자 민중의 후보라고 인식되었던 백기완 후보는 막판에 후보직을 사퇴하여 두 자유부르주아 정치꾼에게 굴복했다. 또한 국회의원 선거가 있을 때마다 소위 노동운동의 지도자들이 부르주아 정당의 후보로 나와 이들에게 좌익적 “개혁” 외피를 제공해왔다. 한때 지극히 전투적이었던 남한의 노동운동이 하강곡선을 그리고 있는 주 요인의 하나가 바로 노동운동 내부의 인민전선 노선이다.

당연히 사회주의 혁명가들은 권영길의 개량주의를 폭로해야 한다. 그러나 이들은 노동운동 내부의 전투적 부위가 민주노동당을 자신의 정당으로 간주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또한 권영길의 인민전선 경향이 아직 실현되지 않았으며 민주노동당이 부르주아 정당들에 대항하여 노동계급의 정치적 독자성을 초보적인 형태나마 구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따라서 민주노동당 내부에서 개량주의에 대해 투쟁하는 것이 가능하다. 또한 주관적인 혁명가들이 민주노동당을 노동계급의 정치적 발전의 틀로 인식하여 지도부의 노골적인 개량주의에 반대하여 당내에서 투쟁하고 있다. 민주노동당 내부에서 지도부에 반대하는 혁명 세력은 혁명적 맑스주의의 이론적 실천적 전통에 기반하여 투쟁해야 한다. 그러면 진정한 혁명적 강령에 기반한 노동계급 전위를 결집시키는 위대한 임무를 완수할 수 있다.

민주노동당 내부에서 활동하고 있는 주관적 혁명 조직 가운데 국제사회주의자들(IS)이 있다. 영국의 사회주의노동자당의 정치를 추종하는 이들은 민주노동당의 창당을 계기로 조직을 해산하고 당의 학생위원회와 서울의 일부 지구당을 장악하고 있다. 또한 다함께 라는 당내 그룹을 조직하여 미제국주의의 군사적 도발을 반대하는 부르주아 평화주의 운동을 실천하고 있다. 제국주의를 패배시키고 진정한 평화를 성취할 임무는 혁명적 노동계급의 국제적 연대로만 가능한데 이들은 “전쟁 반대”라는 알량한 평화주의를 내세우며 제국주의 부르주아 계급의 선의에 기댈 수 있다는 환상을 운동 내부에 유포하고 있다. 더욱이 당내에서 혁명적 강령을 제시하여 정치투쟁을 수행하는 대신 젊은 조직원들을 동원하여 대중집회에서 민노당의 돌격대 역할에 만족하면서 운동 내부의 후진적 부위에 영합하는 부끄러운 행태를 고수하고 있다. 다함께 12월호는 “민주노동당 선거 참여는 이회창에 반대하는 노동운동과 연결될 수 있으며 이회창 악몽(그의 선거 승리)을 불식시키는 디딤돌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실질적으로 권영길에게 무비판적 정치적 지지를 보내고 있다.

평등사회를 위한 노동자 민중 실천연대(평등연대) 역시 주관적 혁명 조직으로 당내에서 활동하고 있다. 계급협조주의 지도부에 대항하는 당내 좌파의 구심이고자 하는 이 그룹은 당내 “의견그룹”으로 스스로의 위상을 설정하면서 활동하고 있다. 평등연대는 창립선언문에서 “노동운동과 민주노동당의 위기의 주 요인 가운데 하나는 지도부가 자본과 정권의 공세에 대응할 능력을 상실하여 당면 임무들을 인식하고 해결하지 못하는 것이다.” 라고 밝히고 있다. 따라서 노동운동과 당의 건강한 부위들에게 노동 현장의 고통, 분노, 열망을 효과적인 전투적 투쟁으로 조직하여 운동을 쇄신하고 사회를 변화시킬 것을 주문하고 있다. 그러나 이 임무를 달성하기 위해서 어떤 방법들을 동원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명확히 제기하는 것이 없다. 특히 혁명적 강령보다는 전투적 노동자투쟁의 성장에 기대를 걸고 있다. 그리고 제시하는 정책들은 대부분의 경우 자본주의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결국 평등연대는 당지도부의 노골적인 개량주의에 자신이 제시한 운동의 임무를 명확히 대비시키지 못하고 경제주의, 좌파 사민주의, 민족주의 경향을 드러내고 있을 뿐이다. 자신이 공언한 임무를 달성하기 위해서 평등연대는 혁명적 강령을 힘있게 추구하고 체현하여 주관적 혁명 분자들을 결집시켜야 한다.

노동자투쟁이 상승하여 자본주의를 위협하는 결정적 시점에서 민주노동당 지도부는 부르주아 정치 세력에 굴종하여 노동계급을 배신할 것이다. 이때 사회주의 혁명가들은 민주노동당 지도부의 반노동계급적 정체를 인식한 전투적 노동자들의 편에 서서 혁명적 강령에 기반하여 민주노동당의 분열과 혁명 세력의 재편을 도모하여 노동계급의 혁명 전위의 형성에 기여해야 한다. 다만 현재 민주노동당이 대단히 불충분하나마 노동계급의 정치적 독자성의 표현이며 대통령 선거국면에서 부르주아 정당의 후보들에 대항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여 권영길 후보에게 비판적 지지를 보내야 한다.

 

<사칭하는 자를 반대하는 자들>

선거를 앞두고 일련의 사건들이 발생하여 권영길의 자칭 “진보세력”의 대표성을 흐리고 있는 듯 했다. 1940년대 말부터 노동통제 국가기관으로 기능한 한국노총의 상층 관료들은 11월 9일 민주사회당을 창당하고 자기들이 노동계급과 피착취 인민의 대변자가 되겠다고 나섰다. 민주노동당과 거의 같은 선거강령을 발표한 이들은 민주노총보다 덩치가 50% 더 크다는 것을 고려하여 자신들이 권영길로부터 상당한 양보를 얻어 이후 정치적 진출에 발판을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하는 듯 했다. 창당대회에서 민주사회당은 민주노동당과 공조하여 “진보적” 단일후보를 낼 용의를 천명하였다. 이에 대해 권영길은 자신의 선거 득표에 유리하다고 판단하여 환영을 표한 반면 민주노총과 민노당의 활동가들 상당수는 두 정당의 공조 움직임에 대해 모멸감을 느꼈음에 틀림없다. 이들은 거의 20년에 걸쳐 한국노총의 계급협조주의에 대항하여 국가로부터 독립한 독자적 노동운동을 위해 투쟁해 왔기 때문이다. 결국 후보 등록 막판에 민주사회당은 후보를 내지 않기로 결정했는데 소문에 의하면 이 당의 지도부가 민주노동당과 통합하고 권영길을 미는 대가로 2004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전국구 의석을 요구했다고 한다. 혁명가들은 이 사이비 노동운동 지도자들의 냉소적인 야합을 폭로-비난하고 혁명적 노동자 정당의 건설을 주창해야 한다. 이 정당은 노동계급 투사의 최상의 분자를 결집하여 부르주아 정치 세력에 대해 노동자의 독자적 정치 세력화를 도모할 것이다.

한편 민주노동당과 민주사회당 지도부의 야합은 “비타협적 원칙”을 고수하는 노동계급과 민중의 대표를 요구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에 대해 사회당은 민주노동당과 유사한 강령을 제시하면서도 선거주의, 계급협조주의, 북한 정권 등에 반대한다고 주장하며 “진보세력”의 대표성을 자임하고 나섰다. 스탈린주의의 파산으로 그나마 남아있던 조직들의 결집체인 사회당은 자신의 대표 김영규 교수를 후보로 내세웠다. 그러나 민주노동당과 같은 개량주의 강령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대중적 기반은 하나도 없는 사회당이 노동계급을 대표한다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따라서 혁명가들은 사회당에 대해서는 비판적 지지도 보낼 수 없다. 물론 사회당이 북한 정권을 반대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이 정당의 강령은 아주 핵심적인 것을 간과하고 있다: 김정일 관료집단에 대해서는 반대하되 제국주의와 김대중 정권의 자본주의 흡수통일 전술인 “햇빛 정책”에 반대하여 무조건 북한을 군사적으로 방어해야 한다. 제국주의 세력과 남한의 부르주아 정치 세력들은 북한의 난관을 이용하여 북한을 자본주의 이윤추구의 터전으로 변모시키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자의 힘] 역시 민주노동당의 합법주의, 선거주의, 개량주의에 반대하고 있다. 그리고 이 그룹은 노동계급의 진정한 전투정당을 건설하는 것이 당면한 운동의 임무라고 선언하고 있다. 또한 노동계급의 역사적 이해를 진정으로 대표하는 강령을 지지한다고 주장하면서 노동운동 내의 진지한 세력들이 공동으로 이 강령을 작성하자고 주문하고 있다. 그러나 [노동자의 힘]은 이 강령의 모델을 개량주의에 찌든 호주민주사회당 그리고 독일민주사회당에서 찾고 있다! 한때 스탈린주의와 민족주의를 추종한 “진보적” 교수들을 지도부로 하고 노동자주의에 매몰된 현장 활동가들을 발로 한 이 그룹은 민주노총/민주노동당에 대항할 대중적 기반을 구축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러나 임박한 대통령 선거까지 대항 세력을 구축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9월 14일 임시총회를 열어 “전국공동투쟁본부”를 구성하기로 결정했다. 이를 통해 선거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은 채 노동자와 민중의 생존권 투쟁을 계속 지속시키면서 진보진영의 단일 후보를 선정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공투본이 진보 진영의 독자 후보가 되기를 열망하는 권영길의 입지만을 강화시킬 것이라고 생각하여 공투본을 곧 해체해버렸다.
사회당과 [노동자의 힘]은 민주노동당보다 강령적으로 약간 좌에 위치해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최대/최소 강령의 틀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사회주의를 최종 목표로 설정하면서도 현실의 실천에서는 현장의 권리와 노동조건 개선의 경제주의적 틀로 투쟁을 한정하는 것을 정당화하고 있다. 결국 이들은 민주노동당의 강령적 결점은 그대로 공유하면서 자본가 정치 세력에 대항해서 기형적으로나마 노동자 대중 정치투쟁의 실현체라는 민주노동당의 강점은 가지고 있지 못하다.    
노동계급의 해방투쟁을 진전시키는데 필요한 것은 이행 강령이다. 이것은 노동계급의 기본적이고 시급한 요구들을 표현하면서도 자본주의에 대항해서 노동 대중의 정치의식을 높이는 여러 요구들의 체계이다. 자본주의를 타도하고 노동자 정부를 수립하지 않고서는 기본적 요구들의 실현은 기껏해야 일시적일 수밖에 없다.

혁명적 이행 강령은 임금 인하 없는 노동시간의 대폭 단축, 기업 장부의 공개, 노동자에 의한 생산의 통제, 노동자 정당방위대와 민병대 수립, 노동자 정부의 수립 등을 위해 투쟁한다.  이 일련의 요구들은 체계적으로 그리고 투쟁의 구체적 조건에 맞게 구사될 경우 전세계와 남한에 몰아치고 있는 신자유주의 공세에 맞서 대대적 실업과 노동자 생활수준의 저하에 대항해 노동대중을 투쟁으로 이끌 수 있다. 더욱이 오직 노동자 정부의 수립만이 전세계 노동자와 인민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인식을 진전시키는데 이 강령은 꼭 필요하다.

지난 몇년간 민주노총을 비롯한 노동자 조직들은 대대적 실업과 노동조합 파괴공작에 저항하면서 임금 삭감 없는 노동시간 단축과 기타 요구들을 제출했다. 그러나 개별적으로 그리고 절충적으로 제시하는 이행 요구들은 투쟁하는 노동자의 의식을 자본주의 경제논리의 한계를 넘어 뛰어넘게 할 수 없다. 혁명가의 임무는 노동자 투쟁을 경제주의의 협소한 틀에 제한시키는 자생적 경향에서 노동자들을 떼어내어 이들의 시야를 크게 열어주는 것이다. 즉 노동계급의 사회주의 혁명만이 근본적으로 그리고 영속적으로 일상적 생존권을 지킬 수 있다는 인식을 각인 시키는 것이다.

현재 남한 혁명가들의 제 1차적 임무는 노동계급을 오늘의 의식수준과 투쟁수준에서 혁명적 의식수준과 투쟁수준으로 지도할 수 있는 강령에 바탕한 혁명정당을 건설하는 것이다. 이 임무를 달성하고 150여년에 걸쳐 축적된 세계 혁명적 사회주의운동의 교훈을 체득하기 위해서는 노동계급 혁명에 대해 진지한 분자들 사이에 동지적인 정치토론이 선행되어야 한다.

 

<보이코트주의자들의 초좌익주의>

현재 비합법 문건들을 제출하는 자칭 트로츠키주의 그룹들이 소규모로 산재하고 있다. 이들은 대개 민주노동당과 사회당의 개량주의를 비난하고 노동자와 혁명가들에게 선거를 보이코트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이들 중의 하나는 [노동자 권력을 위한 전진] 그룹이다. 이 그룹은 11월 9일자로 “개량주의 정치운동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라는 제목의 글을 제출했다. 이 글은 민주노동당을 부르주아 개혁정당으로 규정하고 “개량주의에 대한 비판적 지지는 다양한 형태를 띠고 있지만 이것의 정치적 결론은 결국 마찬가지이다: 노동운동 내에서 민주노동당의 개량주의 정치만을 강화시킬 뿐이다.”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 글은 늘 들어온 아주 추상적인 목표 즉 선진노동자들과 결합하여 강력한 혁명정당을 수립할 때만 사회주의 운동은 자신의 임무를 다할 수 있다는 말로 끝을 맺고 있다.

[계급 전위]  그룹 역시 이와 유사한 주장을 하고 있다. “2002년 대통령 선거와 혁명적 투사들의 전술”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이 그룹은 올바르게 이렇게 주장한다: “이번 대선에서 혁명가들이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아무리 좁다고 하더라도 이들은 모든 가능성을 추구하며 노동계급의 의식을 상승시켜야 한다.” 그러나 이 글의 결론은 애매하다: “권영길을 지지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하십시오. 그러나 그에 대한 당신의 입장과 무관하게 선거공간을 활용하기 위해 우리가 제안하는 방식으로 노동계급의 선전, 선동, 연대, 투쟁 등을 함께 조직하기 위해 우리와 함께 일할 것을 촉구합니다.”

자본주의의 타도를 위해 레닌주의 전위정당을 건설해야 한다는 이 그룹들의 목적은 훌륭하다. 그리고 이들의 개량주의에 대한 지적도 우수하다. 그러나 노동계급과 대중적 개량주의 사이의 관계를 이들은 일면적으로 인식하고 있다.  

물론 민주노동당의 권영길 일당은 사민주의 노선으로 크게 오염되어 있다. 그리고 민주노동당 내에는 소부르주아 분자들이 둥지를 틀고 있다. 그러나 크게 보았을 때 이 정당은 초보적이고 정치하지 못한 방식으로나마 부르주아 정치 세력에 대한 노동계급의 정치적 독자성을 주창하고 있다. 더욱이 당내에는 지도부의 아직 실현되지 않은 인민전선 경향에 반대하는 세력들이 있다. 우리는 민주노동당 지도부의 정치적 성격을 폭로하면서 동시에 노동자 투사들이 자신의 눈으로 이 지도부의 반노동계급적 성격을 직접 볼 기회를 촉진시켜야 한다. 이들이 권영길의 진정한 정치적 실체를 경험으로 파악하는 시간이 빠를수록 이들의 혁명적 의식은 그만큼 빨리 진전할 것이다.  우리는 이 과정을 촉진시켜야 한다. 이 임무는 현 국면에서 권영길에 대한 비판적 지지를 통해 가장 잘 달성될 수 있다.

물론 부르주아 정치과정은 부르주아 계급지배를 공고히 하기 위해 작동한다. 그리고 이 과정 속에서 사회주의 혁명가들이 개입할 여지는 대단히 제한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는 존재하는 여지를 활용하여 노동계급의 역사적 이해를 결집한 강령을 제시하고 노동자의 정치의식을 촉진시키고 부르주아 계급에 대한 이들의 단결을 도모해야 한다. 선거국면에서 혁명가들이 부르주아 노동자당에 대해 구사하는 비판적 지지 전술을 레닌은 “교수집행인의 올가미”로 비유했다. 이 올가미는 노동운동 내의 부르주아 하수인인 개량주의자들을 결국 끝내줄 것이다. 맑스주의자들은 모든 기회를 활용하여 이 목적을 성취해야 한다. 이번 선거에서 노동계급을 사칭하는 권영길을 비판적으로 지지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나 노동계급의 진정한 요구에 부응하는 혁명적 강령 즉 혁명적 맑스주의에 기초한 혁명정당을 건설할 우리의 1차적 목적에 부합할 때에만 이 전술은 의미가 있다. 혁명적 맑스주의는 지난 150여년간에 걸쳐서 1871년의 빠리꼬뮌, 1917년 러시아혁명, 제 3 인터내셔널(코민테른)의 결성, 스탈린주의에 대항한 러시아 좌익반대파의 투쟁, 제 4 인터내셔널의 창립 등으로 점철된 혁명적 사건들을 통해 발전해왔다.

 한반도의 모든 혁명적 분자들이 진지한 정치토론을 통해 혁명적 노동계급 운동의 역사적 교훈들을 공동으로 체득하고 이를 통해 혁명적 노동자당의 기초를 마련할 것을 우리는 촉구한다. 혁명적 노동자당은 미래에 전개될 한반도와 전세계 노동계급의 위대한 승리를 위한 견인차가 될 것이다.

 

 2002년 1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