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와 계급협조주의 논쟁

  논쟁의 배경과 개요:

2012년 3월 31일 노동사회과학연구소(노사과연)이 주최한 토론회 『다시 노동자계급 정치세력화와 2012년』에서 전국노동자정치협회(노정협)는 발제문 『 역사의 대전환기, 다시 생각하는 노동자 정치세력화』(이하 『세력화』)를 발표하였고, 이후 그 발제문을 축약하여 4월 4일자 노동자정치신문에 『 임박한 4.11 총선과 노동자의 전략전술 』(이하 『전략전술』)을 발표했다. 필명 '행동강령'은 4월 15일 『계급협조를 선동하는 노정협』을 통해 위 글들의 계급협조주의적 태도를 비판했고, 이후 노정협의 필명 '문필조작'은 반비판을 시도하며 논쟁이 이어졌다.

 

모든 글은 『 임박한 4.11 총선과 노동자의 전략전술 』의 댓글에 남아있고 여기서는 '행동강령'의 글만 정리한다.

 

계급협조를 선동하는 노정협

4인터 강령안과 선거전술: 노정협의 ‘문필조작’에게

쟁점은 그렇게 복잡하거나 심오하지 않다

 

 

계급협조를 선동하는 노정협

자본가계급과 단절하라!

지난 3월 31일 노사과연이 주최한 토론회 『다시 노동자계급 정치세력화와 2012년』에 제출한 발제문 『역사의 대전환기, 다시 생각하는 노동자 정치세력화』(이하 『세력화』)와 그 발제문을 축약하여 4월 4일자로 노동자정치신문에 발표한 『임박한 4.11 총선과 노동자의 전략전술』(이하 『전략전술』)을 통해 노정협은 이번 총선과 대선에 뜨거운 논쟁거리를 제공했다.

‘3자통합당 배타적 지지 반대’ 운동의 의미: ‘자본가 정당과의 통합은 변절이다’

먼저, 노정협은 노사과연과 더불어 민주노총 조합원 일부의 ‘3자통합당 배타적 지지 반대’ 운동을 오도하는 것으로부터 자신의 논의를 전개한다.

우리가 알다시피 ‘3자통합당 배타적 지지 반대’ 운동의 핵심은 3자 통합이 자본가 정당과의 통합 즉, 계급적 선을 넘은 야합이기 때문에 지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노정협이 『세력화』에서 장황하게 “변절의 경계가 모호하다”는 둥, “사상적, 조직적 대혼란이 극심해질 것”이라는 둥 호들갑을 떨지만, “3자통합당 배타적 지지 반대와 올바른 노동자계급정치 실현을 위한 민주노총 조합원 선언운동”에 참여한 선언자들의 경계와 의식은 명확하다. 그리하여 그 선언문의 부제는 “노동자 착취와 탄압의 주범 국참당과 통합한 통합진보당은 노동자 정당이 아니므로 지지할 수 없다.”이다.

무엇이 애매하고 혼란스러운가? 우리는 그 선언에 동의한다. ‘계급적 선을 넘어서서는 안 된다. 자본가 정당과의 통합은 변절이다.’

그런데, 노사과연은 발표문의 “4. 통합진보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반대 운동에 대한 평가”에서 “(1) ‘배타적 지지방침 반대’와 ‘통합진보당 반대’는 다른 문제이다.”라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선언운동본부가 민주노총의 정치방침(배타적지지)에 대한 반대를 조직하는 것과 총선 공간에서 유권자들에게 통합진보당 반대를 선동하는 것은 그 성격이 다른 문제이다. 민주노총 정치방침에 대한 반대를 조직하는 것은 정당하고 필요한 것이나, 총선국면에서 통합진보당 반대운동을 조직하는 것은 좌익적 오류이다. 왜냐하면 변혁적 정치부대와 그 선거전술이 부재한 현 상황에서의, 즉 변혁적 대안이 없는 현 상황에서 이 통합진보당 반대선동은 대중적 혼란을 야기하면서 스스로 대중으로부터의 고립을 자초하는 자충수이기 때문이다.”

노사과연은 작년 12월, 4월 총선을 불과 4달 앞두고 급히 창당된 통합진보당에 대해 노동자정당이 아니므로 지지할 수 없다는 것과 “총선 공간에서 유권자들에게 통합진보당 반대를 선동하는 것”이 다르다고 주장한다. 맑스레닌주의 관점에서 볼 때, 도대체 어떻게 다르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누가 보아도 그 둘은 논리적 동치이다.

구구하게시리 너절한 이유를 들어가며 이야기하지 말고 솔직하게 이야기 하는 것이 옳다. ‘노사과연은 선언운동본부와 입장이 다르다.’라고. ‘그러므로 만약 “반노동자 정당”이고 “신자유주의 정당”인 국민참여당과의 계급적 야합을 통해 탄생했다는 이유로 통합진보당에 대해 “총선국면에서 반대운동을 조직하는 것은 좌익적 오류”라고 생각한다,’라고.

노정협 역시 선언운동본부의 입장이 불편하기는 마찬가지이다. 노정협은 명확한 문제를 이렇게 뒤틀어 제기한다. “배타적지지 반대의 귀결이 진보신당 지지인가?”라고.

“배타적지지 반대 투쟁 진영에서는 “통합진보당은 더 이상 진보정당이 아니다.”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이 주장은 국민참여당과 통합으로 탄생한 통합진보당의 우경화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진보신당은 ‘진보정당’인가?”

자본가 정당과의 통합을 단지 “우경화” 정도라고 인식하는 그 “맑스레닌주의적” 감수성이 놀랍거니와, 노정협은 자신들의 反맑스레닌주의적 전술을 설득하기 위해, ‘배타적지지를 반대한다고? 그럼 진보신당 지지할래?’라는 물음을 던지며 우리의 착시를 유도한다. 마치 우리에게 주어진 선택지가 두 가지밖에 없는 것처럼.

선언운동의 배타적지지 반대가 담고 있는 핵심은 3월 31일의 또 다른 발제자였던 전태일민주노동연구소의 신인철이 표현하고 있다.

“‘배타’적이든, ‘선택’적이든, ‘개방’적이든 그 지지의 형태가 문제인 것이 아니라 노동자가 주체적으로 정치에 나서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아닌 다른 주체를 ‘지지’한다는 것이 문제이다.”

옳거니! 노정협은 모호하고 혼란스러워서 애정남을 모셔와야 되겠다고 반복해서 말하지만, 문제는 명확하다. 신 동지의 말처럼 노동계급이 “자신이 아닌 다른 주체를 ‘지지’한다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그것은 단순히 “우경화”의 문제 정도가 아니다. 계급적 선을 넘은 것이다. “맑스레닌주의”의 폐기이다.

맑스-레닌주의자로서 우리는 모든 기회를 이용하여, 이 사회가 상호 적대적인 계급으로 분화되어 있다는 것, 그리고 국가는 지배계급의 독재를 위한 집행위원회에 불과하다는 것을 피억압인민 스스로 인식하게 해야 한다. 혁명은 그 인식의 성장을 통해서 성장한다. 그러므로 지배계급은 집권한 분파이든 집권하지 않고 있는 분파이든, 정치뿐만 아니라 교육, 언론 등 자신들이 가진 모든 수단과 기관을 동원해서 그 환상을 유지하고 조장한다. 전쟁과 학살, 노동 혹사, 실업, 가난, 불평등, 환경파괴, 인종차별, 성차별 등 온갖 병적 증세로 인민을 도탄에 빠뜨리고 있는 이 자본주의 체제는 그런 환상에 의존하지 않는다면, 단 하루도 버텨낼 수 없다.

“변절의 경계”에 대한 혼란

노정협의 『세력화』는 “변절의 애매한 경계,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타락상!”이라는 소제목을 통해, 최근의 변절자 리스트를 열거하며 “‘진보인사’들의 변절의 경계는 대중적으로 모호해졌다.”라며 혼란을 호소한다.

“민주노동당 역시 유시민 등 국민참여당과의 통합을 통해 ‘전태일정신과 노무현정신’을 합성시키고 있고, 대선에서 민주노총이 안철수나 문재인을 야권연합 후보로 공식 지지할 가능성이 농후해지고 있으며, 이후 공동정부 수립까지 계획되고 있으니 총선 이후 노동자들의 사상적, 조직적 대혼란은 더욱 극심해지게 될 것이다. 이처럼 노동운동 진영에도 변절과 투항의 모호한 경계를 판가름할 판관인 ‘애정남’이 절실해졌다.”

“맑스레닌주의자”라면서 호들갑을 떨 일인가? 계급의 적대적 분리에 기초한 국가가 아니라 ‘만인의 국가’라는 환상을 조장하기 위해, 노동계급과 피억압인민의 상층을 끌어들이는 방식은 수 백 년도 더 묵은 짓이다. ‘수백 년 동안 모든 자본주의 국가에서’ 반복되어 온 것이 ‘2011~12년에 남한 이곳에서’ 재탕되고 있는 것일 뿐, 그렇게 눈 똥그랗게 뜨고 쳐다볼 일이 아니다.

물론 효과는 그만이어서, 역사적 국제적 실천과 분리되어 특정 시공간에 갇힌 즉자적 삶을 살아가는 인민대중은 자꾸 속아 넘어간다. 그런데 ‘맑스-레닌주의자’마저도? 천만에!

“반MB와 야권연대, 선거, 반독점에 대한 맑스레닌주의적 고찰”

노정협의 입장은 『세력화』의 작은 제목 ‘반MB와 야권연대, 선거, 반독점에 대한 맑스레닌주의적 고찰’을 통해 제출되고 있다. “문필조작이다.”라는 공격을 피하기 위해, 그 소제목에 있는 내용을 요약하듯이 소개한다. 전반부는 마오쩌둥의 모순론에 대한 장황한 설명인데, 그것이 우리의 “맑스레닌주의”를 과연 풍부하게 해주고 있는지는 알 길이 없다.

“①-반MB와 야권연대, 선거, 반독점에 대한 맑스레닌주의적 고찰…

②-그렇다면 민주통합당에 대해서는 어떠한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 민주통합당은 독점자본을 대변하는 자유주의 분파이다. 이는 김대중, 노무현 정권에서 분명하게 나타났다. 그러나 현재 집권 세력이 이명박 정권과 새누리당이기 때문에 민주통합당에 대해서는 차별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우리는 먼저 현재 권력인 이명박정권과 미래권력이 되고자 하는 지배계급 한 분파인 민주통합당과의 대립과 모순을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③-민주통합당이 독점자본의 대변자라 할지라도 현재의 주적은 이명박정권이기 때문에 민주통합당과의 일시적, 조건적 공동전선으로 정권을 고립시키고 실천적으로 민주통합당을 폭로해낼 수 있어야 한다.…

④-우리는 이른바 ‘야권연대’를 반대하지 않는다. 노동자의 독자성과 자주성 변혁성을 상실하고 의회주의 선거 중심으로 몰계급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현 시기의 ‘야권 연대’를 반대하는 것이다. 현재의 야권연대가 현실에서는 왜곡되고 타락하고 있으므로 오해를 피하기 위해 선거에서 부르주아 야당과의 한시적, 조건적 제휴라고 하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 될 것이다.…

⑤-후보전술에서 전략은 노동자계급의 변혁성, 독자성, 자주성이다. 이를 바탕으로 사안에 따라 사퇴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변혁진영의 후보로 인해 더 반동적인 새누리당이 된다면 선거를 선전, 선동, 조직화의 공간으로 활용하고 조건부로 사퇴할 수도 있다.…

⑥-지금 총선 국면에서 자본가 정당은 물론이고 ‘진보정당’조차도 책임지지 못하는 온갖 공약을 남발하며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당선 이후에 선거에서 내걸었던 공약을 위반할 시에 이를 대대적으로 폭로하고 당선자에 대한 소환제와 그 당에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제도적 요구를 위해 투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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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반MB”라고? 투쟁 전선은 자본가계급과 노동계급 사이에 그어야 한다고 가르쳐주신 맑스와 레닌 선생은 오늘도 애먼 데 이름이 팔려 고생이 많으시다. 2008년 우리는 이렇게 경고한 바 있다.

“통합민주당은 이명박의 선배이며, 공범이다. 그들은 지금 이명박과 한나라당의 위기를 틈타, 정치적 재생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하지만, 혹시나 쇠고기 재협상이 아니라, FTA의 문제를 전면으로 제기할까봐 노심초사하고 있다. 시위 군중은 그들과 단호히 단절하는 수준으로까지 정치의식이 성장하지 않았다. 그런 사이, 슬금슬금 눈치를 보던 통합민주당은 조금 떨어져 촛불시위의 태도를 살피다가, 부르주아 좌파에 대한 환상을 떨쳐버리지 못한 일부 시위대열의 협조를 얻어, 이제는 분신 사망한 이병렬 동지의 영정 옆에 통합민주당 휘장이 걸린 화환을 가져다 놓을 정도로 대범해졌다.……무릇 사회주의자라면 통합민주당에 대한 환상을 깨는 데에 나서야 한다. 노동계급 그리고 시위군중과 부르주아 정치를 단절시켜야 한다. 부르주아 좌우파가 정국의 상황에 따라 시이소 놀이하듯 번갈아 집권하게 허용해서는 안 된다. 이명박 퇴진이 현실화될수록 부르주아 좌파에 대한 환상이 되살아날 것이고, 인민전선으로 나아가려는 경향은 더욱 커질 것이다.”―『 촛불정국과 사노련의 조합주의적 기회주의 』, 2008년 6월

그런데 그 이후 “반MB전선”을 반복해서 되뇌며, 노동계급의 눈을 흐리는 데에 앞장서 온 이른바 “맑스레닌주의”를 표방하는 몇몇 좌익 조직들이 있었고, 노정협도 그래 왔다는 사실을 안다. 남한의 노동계급은 장차 그 사실을 기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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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그렇다면 민주통합당에 대해서는 어떠한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 민주통합당은 독점자본을 대변하는 자유주의 분파이다. 이는 김대중, 노무현 정권에서 분명하게 나타났다. 그러나 현재 집권 세력이 이명박 정권과 새누리당이기 때문에 민주통합당에 대해서는 차별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우리는 먼저 현재 권력인 이명박정권과 미래권력이 되고자 하는 지배계급 한 분파인 민주통합당과의 대립과 모순을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민주통합당과 새누리당이 똑같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1997년~2007년까지 김대중과 노무현으로 대표되는 소위 부르주아 좌파의 집권기간 동안 겪어보았다. 그들은 질적으로 전혀 다르지 않다. 요즘 현안과 비교해 보더라도 그렇다. ‘파병, 쌍용자동차, FTA, 제주 해군기지, 4대강 거대토목공사(새만금, 세종신도시), 대추리 미군기지, 부안 핵폐기장 건설, 용산 철거, 정리해고, 구조조정, 사유화, 노동악법, 구속 노동자, 자살 등 사망 노동자 등등’ 무엇 하나 새누리당과 이렇다 하게 구별되는 점이 있는가?

“현재 집권세력”이 아니므로 “차별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라고? 물론 집권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집권하고 있을 때 억세게 밀어붙이던 FTA를 반대하는 제스처도 취하고, 자신들의 심복이었던 김종훈과 적대하는 제스처도 취하며, 기타 각종 사안에 대해 부끄럽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은 맞다. 그러나 전혀 낯선 표정이 아니다. 바로 그 표정으로 수백 년 동안 피억압인민을 속여온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유로운 경쟁과 도전을 허용하고 있다는 환상을 자아내는 민주공화제는 자본가계급의 독재를 유지하는 최고의 발명품인 것이다. 노정협 왜 그러는가, 아마추어같이.

“현재 집권세력”이 아니므로 “차별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라고 권하는 노정협과 달리, 우리의 레닌은 이렇게 말한다.

“민주공화국이야말로 자본주의에게는 가장 좋은 정치적 외피이며…자본은 이제 자신의 세력을 아주 확실하고 견고하게 구축하는 바, 부르주아 민주공화국에서는 사람이 누구로 바뀌든, 정부조직, 당이 어떻게 변화하든 이제 더 이상 그것들이 자본을 동요시킬 수 없는 것이다.”―『국가와 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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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민주통합당이 독점자본의 대변자라 할지라도 현재의 주적은 이명박 정권이기 때문에 민주통합당과의 일시적, 조건적 공동전선으로 정권을 고립시키고 실천적으로 민주통합당을 폭로해낼 수 있어야 한다.”

언제부터 ‘사회주의자’의 “주적”이 이명박 정권이었나? 설령 이명박 정권이 파시스트 체제라고 하더라도 우리는 자본가와 정치적으로 한 몸이 되는 인민전선을 체결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김대중과 노무현 집권기를 겪어 본 사람들은 안다. 만약 이명박이 파시즘 정권이라면, 김대중이나 노무현은 ‘지금은 집권하고 있지 않은’ 파시즘 정권이다.

그리고 선거 국면에서 “민주통합당과의 일시적, 조건적 공동전선”은 결국 전면적이건, 부분적이건 민주통합당에 대한 지지를 말하는 것일 텐데 그런 것을 맑스주의 전통에서는 공동전선과 구별하여 인민전선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그 인민전선 전술은 지난 100년의 역사를 통해 재앙적인 전술임이 확인되었다. (참고: 제4인터내셔널 남한사회주의노동자당(가칭) 강령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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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우리는 이른바 ‘야권연대’를 반대하지 않는다. 노동자의 독자성과 자주성 변혁성을 상실하고 의회주의 선거 중심으로 몰계급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현 시기의 ‘야권 연대’를 반대하는 것이다. 현재의 야권연대가 현실에서는 왜곡되고 타락하고 있으므로 오해를 피하기 위해 선거에서 부르주아 야당과의 한시적, 조건적 제휴라고 하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 될 것이다.”

뒤에서 구체적으로 언급하지만, “변혁적 후보로 인해…더 반동적인 새누리당이 당선된다면…사퇴할 수도 있다.”는 “선거에서 부르주아 야당과의 한시적, 조건적 제휴”가 도대체 어떻게 “몰계급적”이 아니라는 것인지 도무지 알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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⑤-“후보전술에서 전략은 노동자계급의 변혁성, 독자성, 자주성이다. 이를 바탕으로 사안에 따라 사퇴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변혁진영의 후보로 인해 더 반동적인 새누리당이 된다면 선거를 선전, 선동, 조직화의 공간으로 활용하고 조건부로 사퇴할 수도 있다.”

노정협이 우리에게 제시하는 이른바 “맑스레닌주의” 전술의 절정부이다. 노혁추의 비판에 대해 ‘우리 전술을 보고 비판적지지라니? 문필조작이다!’라고 고함을 쳤지만, 이것은 비판적지지 수준에도 못 미친다. 우리는 때로 ‘비판적지지’를 전술적으로 고려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대상은 오직 노동계급의 개량주의 정당이 될 것이다.

그 ‘더 반동적인 자본가 분파의 당선을 저지하기 위한 변혁적 후보의 조건부 사퇴’는 부르주아 정치의 자장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옛 운동의 고질병이었다. 2002년 대선에서 바로 그 압력에 시달린 권영길은 다음과 같은 몰계급적 압박감을 토로한 바 있다.

“사표심리다. 2002년에도 같은 현상이 일어났다. 더 심했다. 한나라당 후보만은 막아야 한다는 논리다. 우리 운동원들도 그랬지만 후보 자신이 받는 압력은 대단했다. 권영길이 김대중과 노무현의 당선을 가로막는 게 아닌, 도움이 된다는 확신이 있었지만, 엄청난 압박을 느꼈다. 이러다가 한나라당 후보가 당선되면 나는 어떡하지? 선거개표 끝날 때까지 그게 가장 괴로웠다.”–오마이뉴스, 2006년 5월 29일, 『 남한 17대 대선에 대한 국제볼셰비키그룹(IBT)의 입장 』에서 재인용

도대체 저 후보가 어떤 계급의 후보인지 알 수가 없지 않은가? 전통적으로 NL그룹과 다함께는 각종 선거에서 바로 그 전술을 근 이십여 년 간 구사해왔다. 이제 2012년에 노사과연과 노정협이 “변혁진영의 후보로 인해 더 반동적인 새누리당이 된다면…조건부로 사퇴”라는 전술을 ‘맑스레닌주의적’이라고 치장하며 그 대열에 합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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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⑥-지금 총선 국면에서 자본가 정당은 물론이고 ‘진보정당’조차도 책임지지 못하는 온갖 공약을 남발하며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당선 이후에 선거에서 내걸었던 공약을 위반할 시에 이를 대대적으로 폭로하고 당선자에 대한 소환제와 그 당에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제도적 요구를 위해 투쟁할 수 있다.”

노정협은 우리에게 매니페스토 운동을 제안하는가? 우리가 선거연단에 올라가서 공약을 제출한다면 그 공약은 많은 경우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실현 가능하지 않은 공약일 것이다. 만약 그럴 경우 노정협은 “책임지지 못하는 온갖 공약을 남발하며 지지를 호소”한다고 따지며 “소환”하겠다고 할 텐데, 걱정이 아닐 수 없다.

“IBT와 다함께 그리고 노정협의 공통점” 찾기

노정협의 4월 4일자 『임박한 4.11 총선과 노동자의 전략전술』과 관련된 논쟁 중, ㅊㅅㄷㅇ(또는 ㅊ)라는 필명이 IBT 글 일부를 인용하여 노정협에 따졌다. 그러자 노정협의 ‘문필조작’은 “[국제볼셰비키그룹(IBT)]의 97년 대선[아마도 2002년]에서의 입장과 님이 인용한 다함께의 비판적 지지 입장이나 민주노동당에 대한 태도의 입장과 근본적으로 무엇이 다른지 의아스럽다.”라며 민주노동당에 대한 비판적 지지를 호소했던 IBT의 2002년 글(‘제 16대 대통령 선거에 대한 혁명적 맑스주의자들의 입장’, 2002년 12월)과 87년 대선에서 김대중 지지 이유를 설명하는 다함께의 글(<노동자연대>, 6월 특별 증면호)을 나란히 인용한다. 그러면서 말하길, “사실 ‘비판적 지지’의 대상이 김대중과 민주노동당이라는 것을 제외하면 유사한 논리다.”라고 비판한다.

자본가계급의 후보와 ‘개량적이긴 하지만 노동자정당’인 민주노동당이 “근본적으로 무엇이 다른지 의아스럽다.”는 판정을 들으며, 노정협이 ‘혼란스럽고, 모호하다.’는 호소가 단지 엄살만은 아니라고 확신하게 된다.

물론 그 둘(IBT와 다함께)은 누군가를 비판적으로 지지했다는 점에서 같다. 하지만 맑스주의자에게 핵심은 그 지지의 대상이 ‘누군가’에 있는 것이다.

‘문필조작’은 이어서 IBT와 다함께의 공통점을 입증할, 그러면서 자신들의 계급협조주의 선거 전술도 “맑스레닌주의” 관점에서 문제가 없다는 것을 입증할 증거로 다음을 인용한다.

“우리는 민주노동당 지도부의 정치적 성격을 폭로하면서 동시에 노동자 투사들이 자신의 눈으로 이 지도부의 반노동계급적 성격을 직접 볼 기회를 촉진시켜야 한다. 이들이 권영길의 진정한 정치적 실체를 경험으로 파악하는 시간이 빠를수록 이들의 혁명적 의식은 그만큼 빨리 진전할 것이다. 우리는 이 과정을 촉진시켜야 한다. 이 임무는 현 국면에서 권영길에 대한 비판적 지지를 통해 가장 잘 달성될 수 있다”(위 IBT 입장 글 중)

“사회주의자들은 적어도 수십만 노동자들에게 민주노동당의 실체가 사회민주주의임이 입증될 때까지는 민주노동당을 지지하면서 활동하는 것이 현명하다 … 민주노동당이 1987년 이래 성장해 온 민주노조 운동의 정치적 표현이고, 자본주의의 공세로부터 방어를 원하는 노동계급과 피억압 사회집단의 정서를 나타내기 때문이다.”(최일붕․김하영/다함께 편집팀, ‘좌파 혁신과 연대에 제기될 몇 가지 문제’ 「진보평론」22호, 2004년 겨울 )

인용된 IBT글은 2002년에 발표된 글이다. 그 당시 민주노동당은 계급협조적 태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지 않고 있을 때였다. 그런 점에서 2002년의 민주노동당에 대한 ‘비판적지지’는 충분히 고려할 만한 전술이었다. 또한 인용된 다함께의 2004년의 글도 ‘글 자체만 보면’ 크게 문제될 것은 없다. 물론 “지지하면서 활동”한다는 것이 과연 입당전술이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그러나 『남한 17대 대선에 대한 국제볼셰비키그룹(IBT)의 입장』에 따르면, IBT는 ‘북한/북핵에 대한 입장’과 ‘인민전선 정책’을 이유로 2007년 치러진 17대 대선에서 민주노동당에 대한 비판적 지지를 철회한다. 그에 반해, 다함께는 민주노동당 안에 몸담고 있었으면서도, ‘진보적 부르주아 후보’를 지지해오던 버릇을 못 버리고 ‘미래구상’이나 천정배 또는 문국현 등 부르주아 조직이나 부르주아 후보를 기웃거렸다. 게다가 2011년엔 유시민의 국민참여당과의 합당으로 노동자당의 성격마저 명백히 상실됐음에도 통합진보당에 남아 있다.

그런데 노정협은 두 글을 인용해 놓고, IBT의 입장과 다함께의 입장이 “근본적으로 무엇이 다른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노혁추의 4월 8일자 비판에 대해, 잘 납득이 되지 않는 이유를 대며 “악질적인 종파주의적 태도에 사로잡혀 이성을 상실한 채 광분하여 논쟁의 이 기초적인 태도를 깡그리 무시하고 있다.” “파렴치한 문필상의 조작을 멈추시오!”라며 갈린 목소리로 흥분하던 노정협의 ‘문필조작’이었다.

파렴치한 못된 버릇을 그새 배웠는가?

오직 노동계급의 이름으로

노정협의 『세력화』와 『전략전술』은 우리를 혼란스럽게 한다. 곳곳의 “맑스레닌주의적” 수사로 계급협조주의가 가려져 있기 때문이다. 특히 선거전술을 말하기 이전에는 비교적 올바른 관점을 견지한 내용도 많은데, 그 중 하나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다.

“결국 개량주의 정당의 단기적이고 협소한 측면에서의 현상적인 성공이 장기적으로는 패배를 촉진시키는 역설적인 상황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세력화』

노정협이 제안하는 계급협조주의적이고 투항적 선거 전술은 바로 정확히 “장기적으로는 패배를 촉진시키는” “단기적이고…현상적인 성공”인 것이다.

잔칫상이 차려졌는데 참여하지 못하는 소외감이 아플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소외감은 자본가계급의 독재 치하를 살아가는 노동계급의 운명이다. 노동계급의 이름을 떼고, 사회주의 포기 각서를 써야만 참여할 수 있는 잔치라면, 그런 노예의 잔치는 스스로 거부해야 한다. 그 잔치는 고기 몇 점을 주고 우리의 살점을 도려내기 위한 노예계약일 뿐이다.

우리는 미래의 지배계급이다. 우리는 지금의 지배계급에게 구걸하지 않는다. 우리의 정당은 오직 우리의 이름으로만 조직할 것이다.

2012년 4월 12일

행동강령

 

4인터 강령안과 선거전술: 노정협의 ‘문필조작’에게

 

1. 노정협의 ‘문필조작’은 4월 13일 댓글을 통해 몇 가지 조작을 다시 자행하고 있다.

1. “의회가 폐물이 됐다고 의회참여를 거부하는 좌익공산주의자들의 극좌적 기회주의” 운운을 통해 우리가 마치 모든 의회전술을 거부하는 것처럼 몰아간다. 그런 방식으로 노정협 전술에 대한 우리의 반대와 비판이 ‘극좌적 기회주의’의 소산일 뿐이라는 암시를 주려 한다.

2. “투표에조차 참여하지 못하는 수많은 비정규직, 미조직 노동자들에게 ‘노예의 잔치’를 거부하고 님들이 지지하는 곳의 그 획기적인 선거전술대로, 투표용지를 찢는 투쟁에 동참하라고 하는가요?”하면서, 개량주의 노동자당의 계급전선 이탈로 인해 노동계급에게 ‘선택의 여지’가 사라졌다는 우리 주장을 왜곡한다. 즉, ‘선택(투표: 특정인물이나 정당 지지)의 포기’를 ‘선택권(투표권)의 포기’로 바꿔치려하는 것이다. 이 둘은 전혀 같지 않다.

4월 12일 게시한 『 계급협조를 선동하는 노정협 』 어디를 살펴보아도 그렇게 읽힐 근거가 보이지 않는다. 상대방을 일그러뜨려 자신을 방어하려는 의도적 조작일 뿐이다.

 

2. 『4인터 강령안』의 검토

이번 논쟁을 통해 불거진 지난 총선과 앞으로의 대선에 대한 원칙을 명확히 하기 위해, 2011년 4월 사노위 강령수립 과정에서 제출한 『제4인터내셔널 남한사회주의노동자당(가칭) 강령안』을 살펴보기로 하자.

12. 선거와 비판적 지지 전술

공산주의자는 선거를 통해 사회주의로 이행하거나, 사회주의적인 정책들을 실현할 수 있다는 기회주의적 환상을 철저히 배격한다. 그러나 선거를 활용하려는 일체의 시도를 거부하지도 않는다.

때로 독자후보를 내는 대신,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신당처럼 노동계급에 지지기반을 가지고 있지만, 부르주아적 강령을 가지고 있는 부르주아 노동자당(사민주의 개량 정당)을 비판적으로 지지할 수도 있다. 이것은 그 정당들이 가지고 있는 노동계급적 기반과 부르주아적 정치강령 사이의 모순을 활용하기 위한 것이다. 비판적 지지를 보내는 진정한 목적은 그들의 모순을 노동계급 앞에 폭로하여 자기 계급을 자본가계급에게 팔아넘기는 개량주의 지도부로부터 노동계급을 떼어내는 데에 있다.

하지만 이 비판적 지지 전술은 이 정당들이 부르주아 정당들과 단절할 때에만 고려해 볼 수 있는 전술이다. 부르주아와 연합 공천을 하거나 선거협약을 하는 등의 인민전선을 체결할 경우, 부르주아와의 인민전선으로 인해 사민주의 개량 정당이 가지고 있는 모순이 은폐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판적 지지를 채택하는 것은 정치적 재앙이 될 것이다.”―『 제4인터내셔널 남한사회주의노동자당(가칭) 강령안

요약하자면,

1. 기회주의적 환상을 배격하지만, 그렇다고 선거 활용 시도를 거부하지도 않는다.

2. 부르주아 노동자당(사민주의 개량 정당)을 비판적으로 지지할 수도 있다.

3. 하지만 이 비판적 지지 전술은 이 정당들이 부르주아 정당들과 단절할 때에만 고려해 볼 수 있는 전술이다. 부르주아와 연합 공천을 하거나 선거협약을 하는 등의 인민전선을 체결할 경우,…정치적 재앙이 될 것이다.

노정협의 선거전술에 대한 우리의 비판 『계급협조를 선동하는 노정협』은 바로 위와 같은 입장에 입각한 것이었고, 특히 세 번째 원칙이 그 핵심이었다.

3. ‘선언자 대회’와 4인터안 그리고 노정협/노사과연 입장의 관계

우리 입장은 ‘3자통합당 배타적 지지 반대와 올바른 노동자계급정치 실현을 위한 민주노총 조합원 선언운동 선언자’들의 입장과 온전히 일치한다.

“노동자 착취와 탄압의 주범 국참당과 통합한 통합진보당은 노동자 정당이 아니므로 지지할 수 없다.”―2012년 1월 14일, 선언자 대회

그런데, “총선국면에서 통합진보당 반대운동을 조직하는 것은 좌익적 오류”라는 노사과연과 노정협은, 우리 입장 그리고 ‘선언자 대회’의 입장과 배치되는 것이다.

그런데 노정협은 그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고 있다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노정협이 제안하는 “변혁적 후보로 인해…더 반동적인 새누리당이 당선된다면…사퇴할 수도 있”는 “선거에서 부르주아 야당과의 한시적, 조건적 제휴”라는 전술은, 단순히 개량주의적 노동자당에 대한 비판적 지지의 원칙을 훼손하는 것만이 아니다. 그것은 변혁적 후보를 포기하고 부르주아 야당을 직접 지지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노정협의 ‘문필조작’은 자신들도 분별할 수 있는 안목이 있다는 듯이, “과거 민주노동당이…부르주아 정당과 최선이 아닌 차선이라는 명목으로 야합”하는 것을 “소환” 대상의 예로 제시한다. 그런데 문제는 “변혁적 후보로 인해…더 반동적인 새누리당이 당선된다면…사퇴할 수도 있”는 “선거에서 부르주아 야당과의 한시적, 조건적 제휴”라는 노정협 전술이 바로 그 “부르주아 정당과 최선이 아닌 차선이라는 명목으로 야합”이라는 사실은 감지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문필조작’은 우리에게 “솔직함” “현실감각” “창의력”을 갖기를 권한다. 그러나 노정협이 제안하는 전술이 “솔직한 현실감각”의 발로일지는 모르지만, 노동계급의 그것은 전혀 아니다. 그리고 전혀 “창의적”이지 않다. 수많은 기회주의자들이 백 수십 년 동안 계급적 바리케이드를 넘어 투항해 갔던 바로 그 루트이다.

4월 15일

행동강령

 

쟁점은 그렇게 복잡하거나 심오하지 않다

 

“사물의 이름을 올바르게 부르기”

선거전술에 관한 논의에 들어가기에 앞서 당부한다. 중심 쟁점이 아니어서 언급을 삼가왔지만, 이젠 좀 해야겠다. 제발 과학적 입장을 견지하여 사물의 이름을 올바르게 부르도록 하자. 노정협을 비판한다고 모두 다 트로츠키주의자인가? 스탈린주의를 비판한다고 해서 다 트로츠키주의는 아니다. 反스탈린 정치조류는 대략 다음과 같을 것이다.

1. 소련을 퇴보한 노동자국가로 분석하여 소련을 자본주의 반혁명으로부터 방어할 것과 관료집단에 대한 정치혁명을 주장한 트로츠키와 그를 계승한 트로츠키주의자.

2. 소련을 국가자본주의로 규정하고 제국주의와의 갈등에서 중립적 입장(궁극적으로 제국주의편)을 취하고 자본주의 반혁명을 게걸음이라고 칭하는 국가자본주의론자

3. 1, 2에 해당하지 않는 운동권 反스탈린주의자

4. 자본가계급의 반공주의

설명하는 것처럼, 트로츠키주의는 反스탈린주의 중 하나이다. 수차례 지적했지만 그럼에도 “트로츠키 국가자본주의 경향” 같은 되도 않는 표현을 끝내 고집하는 까닭은 그렇게 해야 비판하기 쉽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렇게 지적한 바 있다.

“사물을 총체적으로 살피려는 즉, 과학적 관점으로 그 사회들을 분석하려는 시도는 자신들의 극단화된 관점―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관료집단의 이해와 소부르주아적 이해에 기반한―인 스탈린주의와 국가자본주의론의 허구성을 폭로하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가 된다. 그리하여 트로츠키(주의)는 스탈린주의와 국가자본주의론처럼 극단적 관점을 취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양쪽 모두의 비판 대상이 된다.스탈린주의자들은 트로츠키(주의)가 마치 국가자본주의론과 같이 소련 방어를 거부한 것처럼 왜곡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반동성을 방어하려 든다. 한편 국가자본주의론자들은 한편으로는 자신의 이론이 트로츠키(주의)에 기초해 있는 것처럼 호도하다가도, 자신들의 기회주의가 공격받을 때는 트로츠키(주의) 역시 스탈린주의와 다를 바 없는 것이라고 왜곡하며 자신의 반동성을 방어하려 든다.”―『 흐루시초프의 비밀연설과 스탈린주의

다함께를 따라 배우는 노정협

노정협의 문필조작은 우리에게 지금 제기된 문제: ‘A 부르주아 정당과 합당한 통합진보당을 선거(총선과 대선)에서 지지할 수 있는가? B 더 반동적인 부르주아 정당의 집권에 대한 우려로 덜 반동적인 부르주아 정당에 투표하는 행위는 정당한가?’라는, 사실 대단히 간단하고 명확한 문제를 자꾸 뭔가 심오하고 현학적인 문제로 치장하여 그 뒤에 자신들의 계급협조주의 입장을 숨기려 한다. 그리하여 지난번에는 마오쩌둥의 모순론에 대한 장황한 설명을 통해 ‘이명박 주적론’을 설파하였고(마오쩌둥 모순론에 따른 노정협의 유추: 일제≒이명박‥주적/ 장개석 국민당≒민주통합당‥연대세력), 이번엔 자신들의 계급협조주의 전술이 마치 레닌의 전통을 따른 것이라는 듯이, 레닌의 저작을 일독하라는 주제넘은 충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사실 이러한 방식은 지난번에 말했듯이 “수많은 기회주의자들이 백 수십 년 동안” 사용한 방식이어서 전혀 새롭지 않다. 토니 클리프가 주축이 되어 창립한 IS 그리고 그 한국지부인 다함께가 이 분야의 선두주자이다. 그들은 국가자본주의론이라는 기회주의 ‘이론’을 ‘혁명화’하기 위해 레닌과 트로츠키를 앞세웠다. 카우츠키, 색트먼 등의 배신자 혈통에서 나온 그 수정주의 이론을 레닌과 트로츠키 족보에 올렸다. 남한 역대 선거에서 김대중, 조순을 지지하는 한편, 문국현 등을 지지할 가능성도 열어두는 등, “덜 반동적인 독점자본가 분파”를 지지하는 데 거리낌이 없었다.“변혁적 후보로 인해 더 반동적인 후보의 당선을 돕게 되면서 대중들로부터 고립과 비난에 직면”하지 않기 위해 부르주아 후보를 지지하고, “독점자본의 분파”와 합당한 통합진보당에 여전히 남아 ‘인민전선’ 정책의 최선두에 서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민전선(계급협조주의)’을 경계하는 글을 버젓이 걸어놓는다.

그리고 다함께는 레닌의 『공산주의에서의 ‘좌익’ 소아병』을 성경처럼 들고 지낸다. 자신들의 계급협조 노선을 비판하는 ‘물정 모르는’ “좌익기회주의”를 물리치기 위해서이다. 오늘 노정협은 다함께와 근본적으로 다를 바 없는 계급협조 노선을 제기하면서, “겁나게 과격한 구호만을 쏟아”내는 자들을 향해 그 ‘좌익 기회주의 퇴마서’를 꺼내 들었다. 자신들의 계급협조 정책을 합리화하기 위해 『공산주의에서의 ‘좌익’ 소아병』을 이용하는 빈도수로 레닌주의를 측정한다면, 다함께는 노정협보다 10배 이상 더 레닌주의적이다. 이 두 계급협조주의자들로 인해 그 명저는 라면 냄비 받침만도 못한 취급을 받고 있다.

한쪽으로 굽은 막대를 펴기 위해 레닌이 힘을 쓰자, 이들은 그쪽으로 전력을 다해 잡아당겨서 아예 굴렁쇠를 만들어버렸다. 하지만 걱정하지 말길. 『공산주의에서의 ‘좌익’ 소아병』을 굴렁쇠로 만들어 버린 ‘사회주의자들’ 또한 그대들이 처음이 아니다. 혁명의 기세가 꺾인 후 수십 년 동안 각 나라의 기회주의 조직들에 의해 이어져 오고 족보 있는 작업이다.

노정협은 이 분야의 신참이다. 2007년 11월, 관료와의 통합으로 “독자성과 자주성을 [상실한]…‘계급적’이지 않은 노조는 지지할 수 없다는 식의…초좌파적 태도”를 가지고 있던 당시 노정협을 향해, 숙련된 선배는 이렇게 한 수 가르친 바 있다.

“이처럼 동지적 비판이 아니라 적대적 비방에 매달리는 것, 혁명 운동 내의 동지를 마치 적처럼 대하는 것에서도 이들의 초좌파적 종파주의가 드러나고 있다.…

초좌파적 종파주의의 눈으로 보면 모든 게 왜곡돼 보이기 마련이다. 내가 보기에 노정신과 사노신은 레닌이 ≪공산주의에서의 ‘좌익’ 소아병≫에서 비판한 초좌파적 종파주의의 전형을 보여주는 것 같다.…나는 레닌의 분석에 의존해 노정신과 사노신의 ‘어린애같이 유치한 혼란’을 규명하고 비판하고자 한다.…

혁명가를 자처하는 노정신 과 사노신은 위대한 혁명가인 레닌이 “볼세비즘의 온 역사가 유연한 대응, 협조, 부르주아지 정당을 포함한 다른 정당들과의 타협의 사례로 가득 차 있”으며 “부르주아 자유주의의 정치 지도자인 스뜨루베와[도] 공식적인 정치적 동맹을 맺었[었다]”(77쪽)고 쓴 것을 읽으면 놀랄 것이 틀림없다.”―『기아차 비정규직 투쟁과 초좌파적 혼란』, 맞불 64호, 2007년 11월 18일

그러자 2012년 4월, 드디어 노정협은 선배 곁으로 다가가 배운 대로 따라한다.

“이들은  종파주의에 눈멀어 <전략전술> 전체에 흐르는 기조를 외면할 뿐만 아니라 유일하게 물고 늘어지는 조건부로 “사퇴할 수 있다”는 부분에 대해 악선동을 하고 있는데, 이 주장의 진면목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달을 가리키는데 손가락을 보고 있으며, 심지어 그 손가락을 물어뜯으려 으르렁거리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레닌은 ‘좌익 공산주의 소아병’에서 겁나게 과격한(?) 구호만을 쏟아 내면서 의회가 폐물이 됐다는 자신들의 관념적인 과격성만으로 선거개입을 거부하는 극좌적 기회주의라고 비판했던 것이다.…

이러한  레닌과 볼셰비키의 원칙적이면서도 풍부한 선거 전술에 대해 오늘날 준동하고 있는 급진적 ‘공문구’를 퍼뜨리기 좋아하는 ‘좌익 기회주의자’들은 아마도 화들짝 놀라며 ‘레닌과 볼셰비키가 야권연대를 주장했다! 비판적 지지를 했다!’며 노정협에 퍼붓고 있는 ‘문필조작’과 악담을 늘어놓을 것이다.”―‘문필조작’, 4월 17일

그리고 다함께가 스스로 인민전선의 화신이면서 인민전선을 경계하는 앞뒤 안 맞는 언사를 별 저항감 없이 하듯이, 요즘의 노정협도 그렇다. 이런 식이다.

“카데트가 전제반동파가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러시아 정치 상황과 현재 한국의 독점자본주의 또 다른 대변자인 민주통합당과 성격을 달리하고 있는 측면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레닌과 볼셰비키가 다양한 수준에서의 선거협정을 맺을 수밖에 없는 상황은 지금과 결코 다르지 않다.”

“성격을 달리하고 있는 측면도 있지만” “지금과 결코 다르지 않다.”라는 것은 도대체 무슨 앞뒤 안 맞는 말인지. 노정협의 ‘문필조작’은 그 간극에 대해서 설명하지 않으면서, 마치 우리가 모르는 심오한 무엇이 있다는 듯이, 신비주의 초식을 쓴다.

“이러한 레닌과 볼셰비키의 선거 원칙과 전술에 대해서는 여기서는 구체적인 전거를 밝히지 않고 있는데 그 부분에 대해서는 이후 보다 체계적인 글에서 엄밀하게 인용하면서 다룰 수 있을 것이다.”

‘절정의 비급’을 숨겨왔다는 듯한 은근한 자신감이다. 그 동안 우리는 이 논쟁이 현학적인 고증 논쟁에 빠지는 것을 피하기 위해, 노정협의 어쭙잖은 레닌 해석에 대한 비판을 최소화해 왔다. 그리고 노혁추는 4월 9일 최소한 이 문제에 대해서만큼은 상당히 올바른 비판을 제출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정협이 ‘절정의 비급’을 가지고 있다면, 더 늦기 전에 사용해야 할 것이다. ‘레닌이 계급협조의 원조였다.’는, 전거를 갖춘 보다 체계적인 글을 부디 제출하기 바란다. ‘레닌이 일국사회주의의 원조였다.’는 주장을 과학적으로 신봉하는 노정협이므로, 그것이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다. 레프트21에 가면 참고자료를 많이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쟁점은 그리 복잡하지 않다.

다시 정리해 주지만, 문제는 간단하다. 노정협과 노사과연은 다음 물음에 답하면 된다.

하나, ‘3자통합당 배타적 지지 반대와 올바른 노동자계급정치 실현을 위한 민주노총 조합원 선언운동’은 “노동자 착취와 탄압의 주범 국참당과 통합한 통합진보당은 노동자 정당이 아니므로 지지할 수 없다.”라고 선언했다. 이 선언에 대한 노정협과 노사과연의 입장은 무엇인가?

둘, 노사과연은 3월 31일 발표문에서 “총선국면에서 통합진보당 반대운동을 조직하는 것은 좌익적 오류이다.”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한 노정협의 입장은 무엇인가?

사실 노정협의 입장은 ‘선언운동’의 통합진보당에 대한 지지 거부보다 훨씬 더 멀리 나아가고 있다. 이들은 “변혁적 후보로 인해…더 반동적인 새누리당이 당선된다면…사퇴할 수도 있”는 ‘야권연대’를 제기하는 것이다. ‘선언운동’은 독점자본 분파의 일부와 통합한 통합진보당에 대한 지지를 거부한다. 노정협은 그 통합진보당과 독점자본의 본류인 민주통합당과의 야권연대를 주장한다. 그러면서 이 계급협조 전술에 빨간 리본을 단다. 자신들의 ‘야권연대’는 몰계급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는 이른바 ‘야권연대’ 자체를 반대하지 않는다. 노동자의 독자성과 자주성, 변혁성을 상실하고 의회주의 선거 중심으로 몰계급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현 시기의 ‘야권연대’를 반대하는 것이다.”

잠깐만 생각해 보자. 선언운동과 우리는 부르주아 정당인 국민참여당과의 합당을 통해 노동자정당이 사라졌고 새로 탄생한 통합진보당은 더 이상 노동자의 정당이 아니라고 판단한다. 이미 이렇게 몰계급적인 상황이 되었고, 그로 인해 “변혁성, 독자성, 자주성”이 상실되었는데, 노정협은 그 통합진보당에 대한 지지를 넘어서 노정협 스스로도 이야기하듯이 “독점자본을 대변하는 분파”의 하나인 민주통합당을 “더 반동적인 새누리당의 당선”을 막기 위해 지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자신들의 ‘야권연대’는 몰계급적이지 않을 것이고 “변혁성, 독자성, 자주성”을 가질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노정협의 ‘문필조작’은 인용하지 않은 부분에 진면목이 있으며, 우리가 인용하지 않은 것은 “의도적 누락”이라고 엄살을 부린다. 마치 우리가 인용하지 않은 자신들의 글에 ‘혁명의 비밀’이 숨겨져 있기라도 한 것처럼 억지를 쓴다.

“변혁진영 후보 사퇴의 전제조건으로 내건” “정리해고 철폐, 비정규직 철폐, 국가보안법 철폐, 미군철수 등의 선거요구” 등이 자신들의 ‘야권연대’의 “진면목”이므로 자신들의 ‘야권연대’는 “변혁성, 독자성, 자주성”이 살아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다함께도 그런 정도의 좌익적 리본은 달 줄 안다. 계급협조에 내성이 생긴 다함께도 생짜로 주장하지는 않는다.

노정협‘표’ ‘야권연대’의 “진면목”을 확인하기 위해 지난번에 “누락”했던(노정협에 따르면 ‘문필조작’을 했던) 부분을 인용해 보자.

“이러한 상황에서 끝까지 사퇴하지 않는 후보전술을 고집하는 것은 자칫하면 더 반동적인 후보의 당선을 돕게 되면서 대중들로부터 고립과 비난에 직면할 수 있다.”―『세력화』, 3월 31일, 『전략전술』, 4월 4일

4월 17일, 노정협의 ‘문필조작’은 그런 요구를 통해서 “대중적 사퇴압박을 피할 수 있을(4월 17일)” 것이라고 주장하며 비판적지지 혐의를 벗고 싶어한다. 하지만 이런 입장을 3월 31일과 4월 4일의 노정협은 이렇게 비판할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끝까지 사퇴하지 않는 후보전술을 고집하는 것은 자칫하면 더 반동적인 후보의 당선을 돕게 되면서 대중들로부터 고립과 비난에 직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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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그동안 노정협의 스탈린주의적 입장을 혹독하게 비판해 왔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노정협과 그 성원들이 소련 붕괴 이후 오랫동안 혁명적 지조를 간직해 왔고, 북핵/리비아 등 각종 예민한 사안들에 대해 일정한 편향이 있지만 시류를 거스르는 용기 있는 입장을 견지해 온 사실 또한 알고 있다. 그래서 이번에 더욱 실망스러웠던 것이다. 우리는 노정협 동지들이 지난 4월 4일에 제출한 계급협조적 ‘야권연대’를 근본적으로 폐기하고 계급전선으로 복귀하기를 바란다.

4월 22일

행동강령